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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Jul 17. 2024

오늘 밥 먹을 땐 엄마를 보자.


오늘 밥 먹을 땐 엄마를 보자.
엄마의 밥그릇, 엄마의 국그릇
엄마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얼마나 담겨있고
음식 중에 어떤 것을 뜨고 집는지

다른 식구들과 달리
의자에서 몇 번 일어서는지를

설거지해야 할 그릇이 몇 개인지
남은 뒷 일을 또 얼마나 되는지를

꼭 한 끼만 보자, 딱 한 번만 세자

그래도 느낌이 없다면
그래도 눈물이 없다면


당신은 사람도 아닙니다.
나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동시?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 쓴 이다.

갑자기 악상이 떠오른 슈베르트가 냅킨에 악보를 그린 것처럼, 어느 날 녁을 먹고  앉은  책상  A4 용지 새인양 자꾸만 손이 가 쓴 것이다.

물론 난 슈베르트와 같은 천재와는 거리가 무척 멀고 작품(?) 또한 처참함을 잘 알고 있다.


울로 이사와 첫 집이었던 반지하를 떠나 무리해서 구입한 집은 많이 좁았다. 부모님이 여기저기 많은 집들을 둘러보셨다. 엄마의 꿈에 나온 빨간 벽돌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엄마 꿈 때문에 좁은 곳에서 산다는 타박을 자식들에게 듣기도 하셨다. 그래도 반지하 포함해서 3층인 그곳의 임대수익, 엄마의 급여 등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었고 건물은 작아도 남는 자투리 땅이 있어 텃밭으로 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동네가 재개발어 괜찮은 금액으로 넘기고, 그때만 해도 핫했던 일산에 번듯한 새집을 장만해서 이사할 수 있었다.


위의 걸작을 탈고한 그날에는 나보다 11살 많은 큰 누나가 이사 인사겸, 둘 중 동생인 딸 조카 하나만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새집이 좋아 보였는지 어린 조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조른다.


엄마, 우리도 이사 가자.
이사 가는 게 얼마나 힘든데??? 돈도 없어...
만 원짜리 몇 개만 있으면 가잖아. 가자 응?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는 즐거웠고 아버지 또한 밝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만 혼자 즐겁지 못했다.

바쁜 누나가 자주 오지도 못하는 데다 둘 만의 방문 또한 처음이라, 큰 딸과 딸 손 먹이기 위해 갖은 정성으로 식사를 준비별히 챙기시는 엄마의 모습 그랬다. 앉아서 대접받는 큰 딸, 아니 그보다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딸과 손녀를 위해 바 움직이는 마의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치 못했다.


'누나가 좀 해!!!' 내 속엣말이었다.

아마 손님이 큰 누나가 아니라 작은 누나였다면 난 열 번이라도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것이다. 큰 누나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사실 그럴 수 없는 누나의 삶에, 조카의 집투정에 내 맘이 더 아팠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며 누나는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최고의 명분 속에는 항상 집을, 아니 아버지를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음을 잘 안다. 누나는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조카가 태어났다. 큰 누나의 결혼식 중학생이었던 난 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혼자 내 첫 조카를 돌봤다.

그녀의 결혼식날 그녀의 아들에게 먹일 점심을 만들기 위해 카레를 봉지째 넣고 한 시간 가까이 끓였는데 먹을 수 없었.  보니 그것은 분말카레였다. 설명서대로 적당량의 물을 붓고 다시 인 카레죽을 조카는 먹지 않았다. 매여~ 맛없떠...


동네 퍼마켓 운영, 개업이나 장례식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환을 만드는 일, 식당 일 등 힘들게 고생한 누나다. 못난 남자를 만나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다. 다가 불행 그 남자는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적지 않아 물심양면으로 거운 삶을 살았다. 이런 큰 누나가 지친 몸을 이끌고 참으로 오랜만에 따뜻한 부모, 아니 엄마의 품을 찾아온 것이다.


고된 삶의 한 끼를 어미에게 마음 편히 의탁하는 큰 딸, 그 노고를 알기에 지극한 정성을 먹이는 엄마,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를 안고 가슴 아픈 나...


누나가 일을 하다 보니 어린 두 조카가 외가에서 자란 시간이 길다. 그 때문인지 조카들은 항상 막내 삼촌이 제일 멋지고 좋은 삼촌이라고 한다. 다른 조카들도 있지만 나 또한 이들에게 그리고 큰 누나에게 가장 깊은 정을 느낀다.


누나가 돌아간 이후에 엄마는 내게 어린것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사 가자고 하더라며 어김없이 눈물을 보이셨다.

자식보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부모는 죄스럽다며...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한 번의 한숨 후...

큰 누나로 인해 마음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시다.


큰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데, 엄마가 못나서 내 딸이 고생한다...



엄마의 자책을 들을 때마다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싫어 아버지를 떠났으나 결국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과 평생의 인연을 맺은 딸...


가족이란 것이 혈연이라는 것어찌 이토록 까?


하지만, 반대 우라면

좋은 아버지는 자식생에 가장 큰 축복이리라.


아버지는 비슷하더라도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무엇보다 엄마가 다른 조카들은 어떨까?

그들을 보며 확신한다.



좋은 아버지는 자식의 생에 가장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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