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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04. 2021

미안해, 수필아

글쓰기에 대하여


  수필아, 안녕 어떤 말로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특별하게 인사를 하고 싶은데 생각나는 게 없어. 평범한 날 용서해. '나는 처음이지?' 맞아 나도 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낯설지가 않아. 왜 그럴까? 아마 중학교 때쯤이었을까? 우리 한 번쯤은 복도에서 마주쳤을 거야. 무심하게 지나쳤겠지만 말이야. 그리곤 서로 모른 척 살다가 이제야 인사를 나누게 됐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난 좋아. 넌 어때? 너도 좋았으면 좋겠어. 우선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실은 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어. 몇 번 지나쳤다고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나의 잘못이었어. 생각해보니 난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단순하고 쉬운 친구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얕잡아 봤나 봐.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 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만날까? 생각해봤어. 아는 사람을 만날 때는 그냥 편하게 대하면 돼. 그런데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는 걱정이 되지. 처음 만나는 거라 조심스럽지. 상대는 나와 다르기 때문이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방도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할 거야. 만나면 서로 어색할 거야. 모든 것이 궁금해.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미리 알아보기도 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탐색을 하기도 해. 또한 만나면 이야기도 해보고 느낌들을 나누곤 하지. 이야기가 잘 통하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하지.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이 나는 경우도 있어. 한 번의 만남으로 친해지긴 어려워. 바로 친해지진 않아. 너나 나난 그런 성격이잖아, 그렇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거든. 그러는 과정을 통해서 인연이 되거나 아예 인연이 되지 않거나 하겠지.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는 거야. 새로운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새로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야. 예외는 없어. 그런 점에서 보면 난 수필이 너와의 만남에 실패한 사람이야. 너에 대해 미리 알아보거나 탐색을 하지 않았거든.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나눠 보지도 않고 친구가 됐다고 착각을 했어. 실은 수필이 네가 나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는데 막무가내로 나는 너를 친구인 줄 알고 막 대했어. 너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어. 난 수필이 너에 대해 써 본 적이 없어. 앞서도 말했듯이 학창 시절에 지나친 기억은 있어. 수필이 하면 피천득 선생님이 생각나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야. 그런데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브런치에 너에 대해 쓰기 시작했거든. 무심한 시간이 한 달이나 지났어. 너에 대해 잘 소개를 한 건지 못 한건 지도 모른 채 써내려 가고 있었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어. 그런데 어느 순간, 너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이 수필이 네가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어. 

  

  은사님께 메일을 보냈어.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수필 이를 향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차 두 편을 보냈어. 은사님은 전부터 나에게 산문을 써보라고 권유했거든. '그러게요, 써보고는 싶은데 써보지 않아서요' 그냥 흘려듣곤 했지. 그걸로 끝이었어. 솔직히 잘 쓸 자신이 없었거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써 봐야지 생각은 했어. 그러나 그때뿐이었어. 실천에 옮기지 않았어. 시도도 해보지 않았어. 그랬던 나였어. 그러다가 브런치를 알게 되었지. 글을 쓸 핑계가 생긴 거야. 아마 그동안은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드디어 너에 대해 쓰기 시작했어. 실은 너를 쓰기 전에 너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지.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쓰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나는 거야.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 건가? 그런 차에 메일을 보냈던 거야. 


  며칠이 지난 후에 답장이 왔지. 메일 제목부터 나를 긴장시켰어. 제목은 "수필?"이었어. 그 걸 보는 순간, 아뿔싸 싶었어. 이게 아니구나. 내용을 보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어. 그동안 수많은 메일을 받아 받는데 제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적은 처음 있는 일이야. 내용은 보나 마나 일 것 같았지. 메일 내용을 한번 들어볼래? "수필은 두 가진데 생활 수필과 사색 수필이 있어요. 생활 수필은 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를 이야기체로 쓰는 거고, 사색 수필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는 성찰로 엮어 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써 보낸 산문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글을 처음 써 본 사람처럼 썼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어 보세요. 산문은 맛깔이 나야 해요. 감칠맛이 나야 읽지요. 깊이 있는 사색이든, 감동적인 단상이든" 이런 내용이었어. 제목 보고 예상했던 바야. 안 봐도 비디오였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로 끝나버렸어. 참담한 심정이었어.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거야. 눈곱만큼의 기대감도 없다는 답이었어. 충격이었지. 뒤통수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어. 그 한방에 나는 바로 넉 다운됐어. 링에 올랐다가 심판이 '시작' 소리를 하자마자 상대방에게 어퍼컷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 얼마나 엉망이었으면 그런 소리를 하셨을까? 은사님은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짚어서 말하는 스타일이거든. 아닌 것을 기라고 하는 입에 발린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 분이야.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너에 대해 쓰기가 겁나기 시작했어. 자판 두드리기가 두려워지고. 산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나는 너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던 거야. 무엇인지 모르고 썼으니 글은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 헤매기만 하고 말이야. 선장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 배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던 거야. 


  나에게 수필은 이런 거였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스르륵 넘어가면 되는 줄 알았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면 되는 줄 알았어.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너무 단순했어. 글은 내가 쓰지만 읽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상대가 읽는 거거든. 상대가 있다는 건 일말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거지. 독자는 나에게 쓴소리를 하진 않아. 속으로 쓴소리를 삼킨 사람도 많았을 거야. ' 뭐 이런 글을 썼어? 이것도 글이라고' 이런 말을 되뇌며 읽던 글을 중단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니 낯이 뜨겁고.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야. 그곳에 들어가서 꼭꼭 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심정이야.  


  무능한 내가 보여. 겁이 나 도망가는 아이 같기도 해. 엄마 한데 혼나고 다락방에 숨어 있는 개구쟁이가 된 것 같아. 숨 막히고 답답한 다락방을 탈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나갈 방법은 없을까? 한동안 방탈출 카페가 유행했던 거 너도 알지? 난 방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지금부터 열심히 찾아봐야 할 것 같아. 그동안은 무작정 길을 가고 있었어. 이 길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거 있지. 눈 앞에는 여러 갈래 길이 펼쳐져 있었지. 그 모든 길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이야. 밤새 뒤척였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어. 그 메일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침대를 잡고 뒤흔들며 휘젓고 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어. 앞이 캄캄하다 못해 뿌옇게 변해가. 앞을 구분하기가 힘들어. 밤새 눈이 내렸어. 폭설이래. 시야가 모두 하얀 벌판이야. 그동안 내가 걸어갔던 길들을 밤새 모두 덮어 버렸어.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아직 한 번도 밟지 않았다고 생각하려고 해. 


  새벽에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 보았어. 공기가 차고 발이 시려. 발 시린 건 참을 수 있는데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더라. 창 밖을 보니 지붕 위로 겨울이 내려앉았어. 지붕 아래 모든 세상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여. 온 세상이 뽀얀 백지 같아. 백지 속엔 아무런 이야기도 없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날씨도 내 맘을 아나 봐. 다시 시작하라고 세상을 백지로 만들어 버렸잖아. 여백을 잔뜩 만들어 놓았어.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지워 버린 거야. '그래 맞아 이거야, 백지인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날씨가 나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느라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웠을 거야. 가로등이 두 눈을 빨갛게 부릅뜨고 지켜주었을는지도 몰라. 누군가 보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펑펑 퍼부었을 거야. 온 세상을 리셋하라는 신의 계시야. 나를 리셋하라는 신호 같아. 컴퓨터만 리셋하라는 법은 없지. 사람도 가능해. 특히 나는 리셋해야만 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나야 해. 그러나 잘못하면 리셋 증후군이 될 수도 있어. 그건 안돼. 현실 세계에선 불가능한 일이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면 안 되거든. 잘못 쓴 글은 아무리 변명해봐도 잘못 쓴 글인 거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제대로 이해하면 되는 거야. 이해한 다음 제대로 쓰면 되는 거야.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조심해. 


  어떤 사람이든 반성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거든. 한 번의 실수는 허용되지만 두 번의 실수는 허용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용납해주진 않을 거야. 명심해야 해. 반성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지. 또한 리셋 증후군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가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거든. 실수가 반복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해. 그러기 위해 부단한 글쓰기가 필요해. 노력이 필요해. 무작정 쓸 일만은 아닌 거 같아. 그래서 오늘 도서관을 가려고 해. 책을 빌리러.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신입생처럼 신나게 걸어갈 거야.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읽어 볼게. 오늘 유치원에서 민호가 책을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 조르는 거야. 그래서 정말 열심히 큰 소리로 읽어 줬거든. 너무 좋아하더라. '변해라, 얍. 변해라, 얍' 소리를 하면 물고기가 되고 비행기가 되는 책이야. '변해라, 얍' 나에게도 주문을 걸어야겠어. 고백하건대 난 수필이 너를 읽어 본적이 별로 없어.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거든.  '산문쯤이야, 아무나 쓸 수 있는 거 아냐. 나도 충분히 쓸 수 있어' 간단하게 생각했어. 너를 너무 우습게 봤어. 한마디로 만만하게 본거지. 너는 그런 취급당할 친구가 아닌데 몰라봤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 모르면 무식하다는 말, 나를 두고 한 말이야. 산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거만하게 굴었어. '수필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를 그렇게 깔보는 게 아닌데 정말 미안해. 이번을 계기로 너를 다시 보게 됐어. 나, 용서해줄래, 내가 손 내밀면 다시 잡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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