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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24. 2022

잊혀지는 서러움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다행이 간병인을 통해 들은 아버지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었다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간병인이 요구하는 기저귀세숫대야샴푸비누 등 온갖 물품을 사다 날랐지만단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은 볼 수는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필요한 물건을 전달해주러 가는 길에 간병인을 겨우 설득해 출입증을 빌려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모자를 깊게 눌러쓰고간호사라도 보면 몸을 돌려 피해가며 아빠 병실을 찾았다.     

      

병실 입구 쪽 근처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문 밖을 보고 계셨다난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보였다아무래도 나를 못 본 것 같아 살짝 병실로 들어가 보았다하필 간호사가 맞은 편 침대 환자와 이야기 중이다난 커튼으로 살짝 침대를 가리고 아빠하고 작게 불렀다멍하니 문밖을 보던 아버지가 나를 본다.          


초점이 없는... 영혼이 없는 눈.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지 않는 눈.


아빠하고 부르며손을 잡아 드렸다병실 안은 덥다 싶을 정도로 후끈한데 아빠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다손을 꼭 붙잡고 다시 불러보았지만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 뭔가 울컥...
아빠를 보는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난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간병인에게 출입증을 건네주며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울먹이다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서둘러 목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다등 뒤로 간병인이 아버님 걱정 말아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겨우 억누르던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올리고 난 흐느끼며 병원을 나섰다그리고는 퇴근 길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파묻혀 청계천으로 향했다     


대학 때 시골 할머니 집을 갔다가 버스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다그때 다쳤던 나는 사고처리와 치료를 위해 버스 회사 관계자와 병원을 가면서 잠시 연락이 끊겼다내 사고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집으로 내달려왔고동네를 뒤흔든 아버지의 통곡에 사람들은 내가 죽은 줄 알았단다.             


아버지는 깨어났지만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세상에서 딸을 가장 사랑했던 딸 바보 아버지는 이제 딸을 기억조차 못한다.          

 

돌아가셔야만 멀어지는 줄 알았다그런데 옆에 있어도 아빤 내 곁에 없다.       

잊혀 진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후벼 파는 서러움일 줄 몰랐다     


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부모라고 영원히 내 곁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이별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몰랐다.

그것이  이렇게나 가슴 찢어지는 아픔일 줄...     


청계천의 차가운 물결은 날카로운 유리가 되어 내 가슴을 상처를 남기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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