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요양원으로 옮기기 전날, 약속시간보다 일찍 병실에 들어서니 간병인은 다른 간병인과 수다 중이었다. “영감님이 돈이 많다네” 하면서 둘이 깔깔대고 웃고 있다. 얼핏 듣기에도 아버지를 조롱하는듯한 그들의 대화에 불쾌해진 나는 “아빠 나 왔어.” 하고 일부러 크게 얘기했다. 그리고는 차갑게 “수고 많으셨네요. 아버지 케어 하는데 필요한 것만 알려주시고 가셔도 됩니다.” 하고는 서둘러 간병인을 보냈다. 내 가족을 남이 함부로 하는 건 용납이 안 되지만, 나서서 따질만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 아버지는 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훨씬 좋아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내 밥부터 챙기신다. 오늘 밤은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 했더니, 엄마는 어디 있냐며, 여기는 추워서 못 잔다며 집에 가라고 한다. 병실 안은 후끈했다. 엄마는 팔을 다쳐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리고 엄마와 화상통화를 연결해 드렸다. 요양원 입소 전,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분노는 엄청났었다. 아버지가 치매 때문에 엄마를 사기꾼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증에 내뱉은 헛소리조차 엄마에게는 비수가 되어 꽂혔던 것 같았다. 엄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불쌍해하면서도, 아버지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억울해했었다.
그런데 화상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가 와락 울음을 터트린다. 아무 말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신다. 아버지 역시 그런 엄마를 보며 아무 말 없이 눈시울을 붉히셨다. 엄마가 저렇게 내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엄마는 우리 앞에서는 울지 않으셨었다.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엄마는 악을 쓰듯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우는 소리만 핸드폰을 통해 전해왔다. 난 서둘러 엄마에게 진정하라고, 아빠 괜찮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던 아버지는 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니 엄마가 내가 죽는 줄 알았나보다.” 하고는 자리에 누우셨다. 절대 다정하다고 볼 수 없는 부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고,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결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아버지 역시 엄마가 하는 것마다 트집을 잡고,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는 아빠와 싸우면 집에 들르시곤 하셨다. 그러면 한바탕 아빠 욕을 하고는, 저녁 드시고 가라는 만류에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시곤 했었다.
비혼인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부의 세계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아버지는 여전히 돌아누워 계신다. 주무시나 싶어 이불을 덮어드리려 하니 아버지는 컨닝하다 걸린 애처럼 나를 쳐다본다. 아버지는 콧줄도, 수액바늘도, 몸에 꽂혀있는 바늘이란 바늘은, 줄이란 줄은 다 뽑아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 다시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원상복귀 시켰다.
그땐 몰랐다. 단지 그것이 시작일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