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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25. 2022

아빠의 거짓말

'왜 그러셨을까?'


검사결과 아버지의 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간신장 등 어디 한군데 멀쩡한 곳이 없었다게다가 간은 암으로 의심되는 증상까지 보였다아버지는 국가에서 받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받으셨다당뇨로 인해 일반 병원도 자주 가시는 편이라 본인의 몸 상태를 이미 잘 알고 계셨을 것 같다그런데 아빠는 아무에게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아니 오히려 거짓말을 하셨었다당뇨 외에는 아픈 곳도 없고당뇨 수치도 거의 정상이라며 항상 괜찮다걱정 말라는 말씀만 하셨었다아빠는 그렇게 모두를 속이고 당뇨 약을 처방받는 것 외에 그 어떤 치료도 받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땐 몰랐었다. 아빠가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숨겼는지...     

    

병원에서는 암으로 의심되는 간 검사를 더 하자고 했다아버지는 이미 엄청난 검사를 받고 있고엄청난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또 검사를 하자고 한다암으로 의심된다면 당연히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겠지만고령에 완치라는 것이 없는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에게암이라고 한들 수술을 하겠는가아니면 항암치료를 받겠는가그것은 단지 아버지를 더 고통스럽게만 만드는 것 같았다우리 가족은 의논 끝에 암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그러나 병원에서는 계속 암 검사를 해야 된다는 식의 부담을 주었고반면 간병인은 매일 나아지고 있다는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추가적인 검사와 수술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조만간 퇴원을 하셔야했다우리는 최대한 빨리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기기로 했다요양병원은 일단 시설이나 등급보다는 면회가 되는 곳을 우선순위로 두었다아버지를 더 이상 남의 손에만 맡기기 싫었다또한 가족 얼굴도 못보고 갇혀 지내는 것이 아버지의 치료와 회복에 전혀 도움 될 것 같지 않았다.        


난 규모는 작지만 엄마 집 근처로면회가 가능한 요양병원을 찾아냈다병원에는 암검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병원 측은 요양병원으로의 이송을 허락 해줬다요양병원에서도 지금 받던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날간병인을 내보내고 내가 아버지 간병을 하기로 했다이때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병원측에서도 마지막 날이라고 편의를 봐줘내가 하루 아빠와 같이 지낼 수 있게 됐다예전에 아버지가 자고 가라고 할 때불편해도좀 자고 올 걸... 오랜 독립생활로 내가 살았던 부모 집이라도 잠자리가 바뀌는 것이 불편했다그래도 자주 자고 올걸 그랬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나만 덜 봐도 하루 밤 지내고 올 수 있었고, 영화 하나만 덜 봐도 식사라도 하고 올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기억도 못할 유튜브, 드라마, 영화를 넘치게 보면서, 친구들과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서너 시간씩 수다를 떨면서, 나를 끔찍이 사랑하고,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내가 사랑하는 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늘 인색했다. 


이번 주 아니면 다음 주,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 주.  

아무렇지도 않게 미루고 또 미루고....

엄마, 아빠는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가고 싶어도 당신들이 그 자리에 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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