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Jun 26. 2022

아빠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무한반복


간호사는 아빠가 몸에 붙어 있는 건 다 떼어내신다며 잘 지켜봐야 한다고 갔다콧줄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바늘들은 못 뽑게 그 위에 테이프를 붙여두고붕대도 감아 두었다그러나 아버지의 손은 쉴 새 없이 이 모든 것을 제거해나가기 시작했다

 

끼우면 다시 빼고다시 끼우면 또 빼고그렇게 무한 반복     


아버지는 내 눈치를 봐가며짜증을 내가며만류하는 내 손을 뿌리쳐가며 몸에 붙어있는 모든 불편하고 아픈 것들을 다 제거해버리셨다참다못한 내가 "하지 말라고!” 윽박이라도 지르면순간 눈이 동그래지며 겁먹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빠가 많이 혼났구나....'          


자꾸 몸을 긁으면 잠을 못 주무시길래 난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온 몸을 닦아드렸다시원하다며 아이처럼 가만히 계신다분명 간병인이 몸을 자주 닦아드린다고 했었는데...시꺼먼 팔목 위를 닦아드리려 하니아프다며 팔을 빼신다.           


'우리 아빠 여기서도 계속 묶여있었구나...'   

      

목욕 후에도 잠은 안 주무시고계속해서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을 떼어내는 것에만 열심인 아버지간호사에게 물어보니아버지가 낮밤이 바뀌어 밤에는 잠을 안 주무신다고 한다분명 간병인은 밤에 잠을 잘 주무신다고 했었다     


자정이 너머까지 아빠랑 씨름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팔을 묶었다아버지가 가만 누워 계시기라도 하면 잠을 주무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아플까봐 수건을 덧대고  최대한 느슨하게 묶었다그러나 아버지는 묶인 팔로 힘겹게 일어나 팔을 묶은 붕대를 풀려고 애썼다난 불편해서 못 주무시는 것 같아한 쪽만 풀어드렸더니그 팔로 묶인 팔의 붕대를 열심히 푸신다안되겠다 싶어 조금 세게 묶어 놓으니 풀어줘하면서 애원을 하신다나는 도저히 더는 볼 수 없어서 다 풀어드렸다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라고오늘 밤만이라도 편하게 계시라고... 내가 잠을 안자면 된다바늘을 다 빼면 다시 다 꽂아 드리면 된다그러다 지치시면 언젠가 주무시겠지.             


그 뒤로 아버지가 콧줄을 빼면 아무 말 없이 끼워드리고,  바늘을 빼려하면 가만히 손을 잡아드렸다그렇게 한참을 하다가 간혹 정신이 돌아오시면 베개 갖다 베라”, “이불 갖다 덮어라” 라며 나를 챙기신다그리고는 미안해하시며 죽어버리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이신다흐느끼시며 돌아누운 아버지를 달래 드리려하면아버지는 몰래 콧줄을 빼고 계신다다시 끼어드리며 아빠이러지마” 하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신다.


차라리 아버지가 어디가 부러진 것이 나을 것 같다.

차라리 아버지가 암인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치매는 정말 거지같은 병이다.        

                              

아빠가 조용히 돌아누워 계시길래 또 콧줄을 빼시나 보다 하고 끼워드리려 하니 아버지가 숨죽여 흐느끼고 계신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이런 병에 걸려서...엄마...엄마...”       

"....."                    



    잊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걸...
아버지도 한때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던 아들이었다는 걸...


이전 04화 알 수 없는 부부의 세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