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형벌
퇴원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알기 어려운 병실 안이었지만, 낮이 되니 아버지의 상태는 밤보다는 훨씬 좋았다. 치매 환자들의 경우 밤에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지난겨울 낮에도 문제였지만, 밤이 되면 잠을 안자고 난리를 치는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엄마는 혼자 계시는 지금도 밤이면 아버지가 방문을 벌컥, 벌컥 열고 들어오는 것 같다며,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주무신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빠는 사기꾼으로 착각하는 엄마에게만 거칠게 행동할 뿐, 다른 사람에게는 예의바르게 행동하시는 편이셔서 그나마 일반 병실에서 치료가 가능했다. 보통 치매 환자들은 밤에 소리도 많이 지르고, 폭력적인 경향이 많아 병원에서 입원을 꺼리고, 특히나 일반 병실은 입원하기 힘들다고 한다.
짐 정리를 하는데, 전문의 몇 명이 아버지가 정말 퇴원해도 괜찮을지 또 확인하러 왔다. 도대체 의사를 몇 명이나 만나 확인을 받아야 퇴원을 할 수 있는 건지... 의사들이 자꾸 집에 가서 잘 지내시라는 인사말을 남긴다. 집에 가는 것이 아닌데, 아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난 더 이상은 어떤 이유로도 아빠에게 거짓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아빠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치료도 필요한 상황이지만. 병원은 면회가 안돼서 집 근처에 있는 면회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옮긴다고 말씀드렸다.
이제부터는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우리가 왜 요양원에 아버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절대 우리가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설명 드렸지만, 아시는지 모르시는지...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하셨다.
병원비를 결재하자 모든 퇴원 수속이 마무리 됐다. 짐을 챙겨 앰뷸런스에 싣고, 아빠를 병실에서 모시고 나왔다. 아빠는 거의 두 달 만에 바깥바람을 쐬는 것인데, 아쉽게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앰뷸런스 타기에도 급했다. 기사는 아버지를 짐짝처럼 앰뷸런스 안으로 밀어 넣는다. 침대 옆 보조의자에 앉은 나는 작은 키에도 다리가 침대에 닿는다. 좁고, 불편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앰뷸런스 안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차는 많이 흔들렸고, 그때마다 침대도 위태로울 정도로 요동을 쳤다. 침대 테두리를 붙잡아 보았지만, 보조의자도 같이 흔들리는 상황이라 별로 도움이 안됐다. 덜컹거리는 침대 위에서도 아버지의 표정은 편해보였다. 차 창밖을 보며 여기는 어디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앰뷸런스 안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신다.
난 이제부터는 면회도 자주 가고, 전화도 자주 드리겠다며, 다시 한번 우리가 옆에서 끝까지 지켜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고는 손을 꼭 잡아드렸다. 아빤 팔짱만 껴도 멋쩍어하며 은근슬쩍 팔을 빼내시는 분이셨다. 자식들에게 애정표현 같은 거 절대 못하시는 그런 세대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차 창밖을 보는 척, 못 들은 척 하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신다. 마치 놀이동산에 간 아이가 엄마 손을 붙잡듯 그렇게... 혹시라도 놓칠세라 꼭 붙잡으신다.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팔에 깁스를 한 엄마가 우산을 쓰고 추워 보이게 서계신다. 팔도 다치고, 비도 오는 날이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기어이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비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 얼굴이 파랗게 얼어있다.
차에서 내리던 아빠가 엄마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신다. 엄마도 아빠를 보고는 반갑게 괜찮냐고 물으신다. 아빠는 오히려 엄마 팔을 보며 괜찮냐고 걱정 하신다. 아마 지난 두 달이 두 분에게는 가장 긴 생이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틋한 시간은 간병인이 아빠를 모시고 들어가면서 끝나버렸다.
4인실 병실 안에 아버지의 침대는 제일 안쪽 아늑한 창가 옆이었다. 병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유리창이 워낙 커서 덜 답답할 것 같았다. 형광등 불빛에 환한 병실은 한낮인데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다. 환한 조명 아래 시체처럼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앙상하게 뼈만 남은 세 명의 어르신이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계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세 분이 똑같은 자세로 누워 계신다. 갓 태어난 갓난아이들의 모습도 비슷비슷하던데, 나이가 드실수록 어르신들의 모습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이분들에 비하니 아버지는 아직 생명의 총 천연 색감을 뿜어내고 계신다. 다리를 꼬고 다소 건방져 보이는 자세로 누워계시는 모습이 마치 ‘난 아직 살아있어!’라고 무언의 항변을 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의사는 아버지가 당뇨 외에 아픈 곳이 많아, 회복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 다른 무엇보다 본인의 힘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열망은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15시간 동안 30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소변줄(유치도뇨관)을 꽂고 기저귀를 차고 계시던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처음 며칠을 빼고는 아예 대변을 보지 않으실 정도로 기저귀에 일을 보는 것을 싫어하셨다. 기저귀에 일을 보는 것이 아빠에게 어떤 의미일지, 어떤 느낌일지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인 일인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두 발로 화장실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일인 줄 몰랐다. 무심하게 해왔던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삶 또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팔을 묶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안전을 빙자한 강제 구속을 더는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더 센 진정제를 투약해서 아버지를 잠만 자게 만들 수도 있지만, 더는 아빠가 팔이 묶인 채 발버둥 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아빠는 그런 잔인한 형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