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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30. 2022

‘묶어놓거나’ or ‘재워놓거나’

난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며칠 후에나는 엄마와 함께 일부러 점심시간에 맞춰 면회를 갔다아빠가 어떻게 식사하며 지내는지 보고 싶었다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들어와서 식사하는 것을 보라며 허락해준다.         

   

병실 안은 점심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시체처럼 누워 계시던 분들을 한분씩 일으켜 식탁 앞에 앉게 했다식사는 생각보다 잘 나왔다아빠는 아침에 줬던 것 다시 준다며 불만이시다아마 똑같은 반찬이 있었나보다집이라고 해서 매 끼니마다 새 반찬을 내놓을 수는 없다다행이 아버지는 병원에서보다 훨씬 잘 드셨다우리 때문인지 과일도 많아 나왔는데과일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말끔하게 접시를 비우셨다

    

옆에 계신 분들도 오물오물 말없이 식사를 하신다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눈을 감고 누워 계셨을 땐살아계시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는데먹는 것으로서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시듯 다들 열심히 잘 드신다.

      

식사를 먼저 끝낸 아버지부터 간병인이 양치를 시킨다대충 양치를 하고 입을 물로 헹구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헹굼 물을 마셔버린다그 타이밍을 놓친 간병인이 옆에 서서 헹굼 물을 내뱉으라고 하면뱉는 척 간병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삼켜버린다양치가 끝날 때까지 이 실랑이는 계속됐다.

         

아침에 줬던 것 다시 준다고 투덜거릴 때만 해도식사 후에 오늘은 정말 잘 먹었다며 흡족해하실 때만해도 정말 멀쩡해보였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난 간호사에게 소변줄은 언제 빼냐고 물어봤다아빠가 너무 불편해하셨는데 아직도 사용 중이다사실 퇴원할 때 빼도 된다는 걸 요양병원에서 일단 착용하고 오라고 해서 그냥 왔던 건데며칠이 지나도 그대로 사용 중이시다화장실을 못가는 것도 그렇지만똑같은 것을 그렇게 계속 사용하면 염증이나 감염 문제도 생길 것 같은데의사가 확인할 일이라며 기다리라고 한다     


요양원종합병원요양병원을 거치며 난 의심만 늘어갔다처음에는 믿고 맡기면 알아서 해주겠지 싶었는데알아서 챙겨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빼라 마라 할 일은 아니지만아빠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그날까지 확인하고 재촉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이 일에 이런 비장함까지 필요할까 싶었지만아빠가 간절히 원하는 것임을 알기에지금은 아빠 스스로 자신을 챙길 수 없음에나라도 챙겨드려야겠다.            


비틀거리며 아장거리는 우리를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들어 갈 수 있게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분들이다이제는 우리 차례다.           

    

난 일주일 쯤 지나 다시 면회를 갔다휠체어를 타고 면회실로 내려 온 아버지는 여전히 소변줄을 차고 있었다그러나 다행히 손목의 멍 자국이나 욕창은 모두 깨끗이 사라졌다적어도 손목이 묶인 채 지내지는 것 같진 않고체위도 자주 바꿔주는 것 같다.            


난 소변줄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아버지가 화장실을 스스로 가도록 연습은 시키지만아직은 혼자 힘으로 역부족이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한다일단 연습이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신체적인 호전에 비해 아버지의 인지 능력은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멍한 듯 약에 취해 보이는 아버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이전 병원에서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직후에 잠시 나를 못 알아본 적은 있었지만이때를 제외하곤 가족들을 못 알아 본 적은 없었다요양병원 측에서는 밤에 소리도 지르고자꾸 침대를 내려오려고 해서 안전을 위해 밤에는 약을 드시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밤에만조금약을 드신 것 같지는 않았다.          

 

종합병원에서는 치매 환자에게 수면제가 안 좋다며 아버지에게 수면제 처방을 하지 않았다아빠가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며 몸에 붙어있는 모든 것들을 잡아 뽑아 버려도수면제가 치매 환자의 인지 능력을 떨어뜨린다며 약 처방을 안 해줬었다그래서 간병인은 아버지를 묶어놔버렸다.    

 

수면제를 안 주고 멀쩡히 깨어있는 환자를 침대에 묶어놓는 것과 수면제를 왕창 먹여 재워버리는 것과 무엇이 더 아빠를 힘들게 할지 모르겠다아빠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아빠는 뭐가 더 싫냐고뭐가 더 버티기 어렵냐고 직접 물어보고 싶다.           


공짜도 아니고 많은 비용을 부담해가며 요양기관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만욕창에 손목에 시꺼먼 멍이 들어 나타나거나아니면 약에 취해 식구들도 못 알아보는 아버지를 마주하곤 한다그렇다고 집에서 돌볼 수도 없는 상황이고...        


‘묶어놓거나’ 
아니면 
‘재워놓거나’ 

                       

정말 이런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렇게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약에 취해 잠만 자다가혹은 묶여 있다가식사 때면 식욕만 남은 좀비처럼 일어나 밥 먹고도대체 왜 사는지 모를 시간들을 죽을 때까지 견뎌내야 한다면... 미쳐버릴 것 같다제정신이라면!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늙어간다.     

병들고 약해져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를 기다리는 것이 이런 비참한 현실이라면...          


난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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