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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30. 2022

15시간동안 30번

잔인한 형벌


퇴원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알기 어려운 병실 안이었지만낮이 되니 아버지의 상태는 밤보다는 훨씬 좋았다치매 환자들의 경우 밤에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지난겨울 낮에도 문제였지만밤이 되면 잠을 안자고 난리를 치는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엄마는 혼자 계시는 지금도 밤이면 아버지가 방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것 같다며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주무신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빠는 사기꾼으로 착각하는 엄마에게만 거칠게 행동할 뿐다른 사람에게는 예의바르게 행동하시는 편이셔서 그나마 일반 병실에서 치료가 가능했다보통 치매 환자들은 밤에 소리도 많이 지르고폭력적인 경향이 많아 병원에서 입원을 꺼리고특히나 일반 병실은 입원하기 힘들다고 한다.          

 

짐 정리를 하는데전문의 몇 명이 아버지가 정말 퇴원해도 괜찮을지 또 확인하러 왔다도대체 의사를 몇 명이나 만나 확인을 받아야 퇴원을 할 수 있는 건지... 의사들이 자꾸 집에 가서 잘 지내시라는 인사말을 남긴다집에 가는 것이 아닌데아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난 더 이상은 어떤 이유로도 아빠에게 거짓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렸다아빠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치료도 필요한 상황이지만병원은 면회가 안돼서 집 근처에 있는 면회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옮긴다고 말씀드렸다.           



이제부터는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우리가 왜 요양원에 아버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절대 우리가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설명 드렸지만아시는지 모르시는지...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하셨다.       


병원비를 결재하자 모든 퇴원 수속이 마무리 됐다짐을 챙겨 앰뷸런스에 싣고아빠를 병실에서 모시고 나왔다아빠는 거의 두 달 만에 바깥바람을 쐬는 것인데아쉽게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앰뷸런스 타기에도 급했다기사는 아버지를 짐짝처럼 앰뷸런스 안으로 밀어 넣는다침대 옆 보조의자에 앉은 나는 작은 키에도 다리가 침대에 닿는다좁고불편하고퀴퀴한 냄새까지 앰뷸런스 안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차는 많이 흔들렸고그때마다 침대도 위태로울 정도로 요동을 쳤다침대 테두리를 붙잡아 보았지만보조의자도 같이 흔들리는 상황이라 별로 도움이 안됐다덜컹거리는 침대 위에서도 아버지의 표정은 편해보였다차 창밖을 보며 여기는 어디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앰뷸런스 안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신다     


난 이제부터는 면회도 자주 가고전화도 자주 드리겠다며다시 한번 우리가 옆에서 끝까지 지켜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고는 손을 꼭 잡아드렸다아빤 팔짱만 껴도 멋쩍어하며 은근슬쩍 팔을 빼내시는 분이셨다자식들에게 애정표현 같은 거 절대 못하시는 그런 세대의 아버지였다그런데 차 창밖을 보는 척못 들은 척 하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신다마치 놀이동산에 간 아이가 엄마 손을 붙잡듯 그렇게... 혹시라도 놓칠세라 꼭 붙잡으신다.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팔에 깁스를 한 엄마가 우산을 쓰고 추워 보이게 서계신다팔도 다치고비도 오는 날이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기어이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비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다그렇지 않아도 엄마 얼굴이 파랗게 얼어있다.           


차에서 내리던 아빠가 엄마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신다엄마도 아빠를 보고는 반갑게 괜찮냐고 물으신다아빠는 오히려 엄마 팔을 보며 괜찮냐고 걱정 하신다아마 지난 두 달이 두 분에게는 가장 긴 생이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애틋한 시간은 간병인이 아빠를 모시고 들어가면서 끝나버렸다.       


4인실 병실 안에 아버지의 침대는 제일 안쪽 아늑한 창가 옆이었다병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유리창이 워낙 커서 덜 답답할 것 같았다형광등 불빛에 환한 병실은 한낮인데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다환한 조명 아래 시체처럼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앙상하게 뼈만 남은 세 명의 어르신이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계신다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세 분이 똑같은 자세로 누워 계신다갓 태어난 갓난아이들의 모습도 비슷비슷하던데나이가 드실수록 어르신들의 모습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이분들에 비하니 아버지는 아직 생명의 총 천연 색감을 뿜어내고 계신다다리를 꼬고 다소 건방져 보이는 자세로 누워계시는 모습이 마치 난 아직 살아있어!’라고 무언의 항변을 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의사는 아버지가 당뇨 외에 아픈 곳이 많아회복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난 다른 무엇보다 본인의 힘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병원에서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열망은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15시간 동안 30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소변줄(유치도뇨관)을 꽂고 기저귀를 차고 계시던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처음 며칠을 빼고는 아예 대변을 보지 않으실 정도로 기저귀에 일을 보는 것을 싫어하셨다기저귀에 일을 보는 것이 아빠에게 어떤 의미일지어떤 느낌일지 난 잘 모르겠다그냥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인 일인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두 발로 화장실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일인 줄 몰랐다무심하게 해왔던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인간으로서의 삶 또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팔을 묶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안전을 빙자한 강제 구속을 더는 용납할 수 없었다물론 더 센 진정제를 투약해서 아버지를 잠만 자게 만들 수도 있지만더는 아빠가 팔이 묶인 채 발버둥 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아빠는 그런 잔인한 형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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