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버지는 밤새 몸부림을 치시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드셨다. 그 밤 내 마음은 갈가리 찢어졌다. 잠이 드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드리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니 병실에 간호사가 검사 도구를 가지고 들이닥친다. 새벽 5시였다. 이제 겨우 잠든 아버지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는다. 아빠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눈을 뜬다.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를 뽑는다. 그리고는 또 다른 검사를 위해 기계를 끌고 온다. 아빠는 싫다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소용없다. 보다 못한 내가 무슨 검사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월요일마다 진행되는 정기검사라고 한다. 오늘 오전에 퇴원할 환자인데도 검사를 받아야 하냐고 물으니, 다른 환자들도 다하는 거라며 검사를 계속하려 한다. 난 몇 시간 후면 퇴원할 환자에게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의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제서야 간호사는 7시에 회진하는 의사와 상담해보라며 검사를 멈춘다.
7시에 회진하는 전문의에게 이야기를 하니, 검사 받을 필요 없다며 검사를 취소시킨다. 그렇게 몇 명의 의사에게 확인을 받고 나서야 모든 검사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다음 주에 예약된 진료 시간을 알려준다. 다음 주라면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실 텐데, 그럼 앰뷸런스를 타고 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 대기후에 의사 진료를 받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소린데...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예약을 누가 잡은 건지 모르겠다. 예약 전 우리에게 어떤 말도 없었다. 난 또 다시 몇 명의 의사를 만나 얘기하고, 여러 명의 간호사에게 확인한 후에야 겨우 모든 예약을 취소시킬 수 있었다. 보호자가 있어도 이 지경인데, 과연 간병인만 있었다면 제대로 퇴원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침 식사가 왔지만 난 좀 더 주무시라고 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9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셨다. 병실이 꽤 시끄러운데도 숨소리조차 없이 깊이 주무시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빠”하고 불러보았다. 미동도 없으시다. 난 무서워 더 크게 “아빠! 일어나! 밥 먹고 자!” 하면서 흔들어 깨웠다.
학교 안 가는 날, 아침에 못 일어나고 있는 우리에게 항상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밥 먹고 자라” 였다. 밥을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자는 것이 좋았던 그 시절. 안 일어나고 있으면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가 사과를 깎아오곤 했다. 과일이라도 먹고 정신 차리라고. 엉거주춤 사과를 먹던 우리는 결국 어느 순간 하품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 꾸역꾸역 아침을 먹곤 된다.
아버지에게 과일을 드릴 수 없지만, 난 아버지가 눈을 뜰 때까지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눈을 뜨셨다. 이내 돌아누워 다시 주무시려는 걸, 억지로 일으켰다.
이대로 눈을 안 뜨실까봐 무서웠다.
아빠는 마지못해 일어나 밥을 몇 술 뜨고는 더는 못 드시겠다며 숟가락을 놓으신다. 더 드시라고 했더니, 나더러 먹으란다. 난 나중에 먹어도 된다고 좀 더 드시라고 했더니, 손 안댄 음식들을 내게 건네신다. 그러면서 병원비 걱정을 하신다. 돈 걱정을 하는 것 보니, 아빠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미안하다며 병원비 때문에 제발 싸우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혹시라도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질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돈! 돈! 돈!
정신이 나가도, 정신이 멀쩡해도 아버지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는 돈! 아마 죽어서나 그 굴레에서 벗어나실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돈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침대에서 내려오시려 하신다. 어제 밤에도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시긴 했지만, 잘 걷지도 못 하시는 상태라 못 가시게 했다. 아빠는 급한 듯 방귀를 뀌시며 또 다시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침대에서 한 발을 내미신다. 정말 급하신 것 같았다. 난 아빠에게 괜찮다고 그냥 기저귀에 볼일을 보시라고 했다. 참다못한 아버지는 간병인이 왜 아직 안 오냐며 빨리 데려오라고 하신다.
딸 앞에서는 방귀를 뀔지언정 똥을 쌀 순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아빠한테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난 아빠가 진짜로 볼일을 볼까봐 걱정했다. 내 인생에서 똥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아마 어린 조카들 것, 몇 번이 다였던 것 같다.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실 때까지만 제발 참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다. 내 마음 아는지...아빠는 안절부절 못하며, 방귀를 뿡뿡 뀌면서도 꿋꿋이 버티셨다. 그때 다행이 퇴원수속을 위해 오빠가 왔고, 난 오빠에게 아버지를 맡겨두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잠도 못 자고, 오전에는 아빠가 화장실 간다고 침대에서 내려 오실까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병원 밖 벤치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데... 정말 살 것 같았다, 후덥하고 답답한 병실에서 아빠와 함께 한 15시간이 내게는 150시간은 되는 것처럼 길고도 힘든,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럴 때 아빠는 오죽할까 싶으니...커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