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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27. 2022

방귀를 뀔지언정 똥은 쌀 수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버지는 밤새 몸부림을 치시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드셨다그 밤 내 마음은 갈가리 찢어졌다.  잠이 드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드리고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니 병실에 간호사가 검사 도구를 가지고 들이닥친다새벽 5시였다이제 겨우 잠든 아버지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는다아빠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눈을 뜬다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를 뽑는다그리고는 또 다른 검사를 위해 기계를 끌고 온다아빠는 싫다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소용없다보다 못한 내가 무슨 검사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월요일마다 진행되는 정기검사라고 한다오늘 오전에 퇴원할 환자인데도 검사를 받아야 하냐고 물으니다른 환자들도 다하는 거라며 검사를 계속하려 한다난 몇 시간 후면 퇴원할 환자에게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의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제서야 간호사는 7시에 회진하는 의사와 상담해보라며 검사를 멈춘다.          


7시에 회진하는 전문의에게 이야기를 하니검사 받을 필요 없다며 검사를 취소시킨다그렇게 몇 명의 의사에게 확인을 받고 나서야 모든 검사가 취소되었다그런데 간호사가 다음 주에 예약된 진료 시간을 알려준다다음 주라면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실 텐데그럼 앰뷸런스를 타고 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대기후에 의사 진료를 받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소린데...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예약을 누가 잡은 건지 모르겠다예약 전 우리에게 어떤 말도 없었다난 또 다시 몇 명의 의사를 만나 얘기하고여러 명의 간호사에게 확인한 후에야 겨우 모든 예약을 취소시킬 수 있었다보호자가 있어도 이 지경인데과연 간병인만 있었다면 제대로 퇴원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침 식사가 왔지만 난 좀 더 주무시라고 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다그런데 아버지는  9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셨다병실이 꽤 시끄러운데도 숨소리조차 없이 깊이 주무시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순간 덜컥 겁이 났다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빠하고 불러보았다미동도 없으시다난 무서워 더 크게 아빠일어나! 밥 먹고 자!” 하면서 흔들어 깨웠다.           


학교 안 가는 날아침에 못 일어나고 있는 우리에게 항상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밥 먹고 자라” 였다밥을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자는 것이 좋았던 그 시절안 일어나고 있으면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가 사과를 깎아오곤 했다과일이라도 먹고 정신 차리라고엉거주춤 사과를 먹던 우리는 결국 어느 순간 하품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 꾸역꾸역 아침을 먹곤 된다


아버지에게 과일을 드릴 수 없지만난 아버지가 눈을 뜰 때까지 흔들어 깨웠다아버지는 마지못해 눈을 뜨셨다이내 돌아누워 다시 주무시려는 걸억지로 일으켰다


이대로 눈을 안 뜨실까봐 무서웠다. 


아빠는 마지못해 일어나 밥을 몇 술 뜨고는 더는 못 드시겠다며 숟가락을 놓으신다더 드시라고 했더니나더러 먹으란다난 나중에 먹어도 된다고 좀 더 드시라고 했더니손 안댄 음식들을 내게 건네신다그러면서 병원비 걱정을 하신다돈 걱정을 하는 것 보니아빠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미안하다며 병원비 때문에 제발 싸우지 말라고 하신다우리가 혹시라도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질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          


정신이 나가도정신이 멀쩡해도 아버지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는 돈아마 죽어서나 그 굴레에서 벗어나실 수 있을 것 같다한참 돈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침대에서 내려오시려 하신다어제 밤에도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시긴 했지만잘 걷지도 못 하시는 상태라 못 가시게 했다아빠는 급한 듯 방귀를 뀌시며 또 다시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침대에서 한 발을 내미신다정말 급하신 것 같았다난 아빠에게 괜찮다고 그냥 기저귀에 볼일을 보시라고 했다참다못한 아버지는 간병인이 왜 아직 안 오냐며 빨리 데려오라고 하신다.            


딸 앞에서는 방귀를 뀔지언정 똥을 쌀 순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아빠한테는 괜찮다고는 했지만난 아빠가 진짜로 볼일을 볼까봐 걱정했다내 인생에서 똥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아마 어린 조카들 것몇 번이 다였던 것 같다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실 때까지만 제발 참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다내 마음 아는지...아빠는 안절부절 못하며방귀를 뿡뿡 뀌면서도 꿋꿋이 버티셨다그때 다행이 퇴원수속을 위해 오빠가 왔고난 오빠에게 아버지를 맡겨두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잠도 못 자고오전에는 아빠가 화장실 간다고 침대에서 내려 오실까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병원 밖 벤치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데... 정말 살 것 같았다후덥하고 답답한 병실에서 아빠와 함께 한 15시간이 내게는 150시간은 되는 것처럼 길고도 힘든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럴 때 아빠는 오죽할까 싶으니...커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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