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거, 참 어렵다
처제가 집에 놀러 왔다. 아내와 셋이 저녁 약속이 있었다. 우리는 종종 식사를 같이한다. 처제는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래서 아내와 나이 차가 꽤 나는 편이다. 나랑은 띠동갑도 넘게 차이가 난다. 이런 내게 처제는 ‘형부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애교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처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물어보니 대학을 수시로 지원했는데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꿈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고 했다. 나중에 뭐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도 걱정이고, 수시에 떨어지면 이제 망한 거라며 울상이었다.
요즘 대학에 안 가면 좀 어떻냐고 이야기하려다 표정을 보니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참 귀여웠다. 열아홉, 스무 살 청소년이 고민하는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처제한테 무슨 조언이나 충고를 해줄 수 있을까. 그냥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공부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지 고민했다. 문득 떠오른 건 집에 있는 시계를 다 고장 내는 거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그날 밤 부모님이 잠든 사이 시계 건전지를 모두 뺐다. 그것도 모자라 망가뜨리기까지 했다. 다음 날 그 아이는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됐을까. 우리는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얘야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렴.”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잘하는 것이 없어도,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경험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처제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로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이 세상 시계를 모두 부숴도 시간이라는 본질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본디 우리는 아름답고 귀한 존재라고.
나도 열아홉 때 꿈이 없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어렵다. 꿈은 거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건가. 아니, 꿈은 꼭 그렇게 거창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