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가 된 남편

by 민정애


외출하려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저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평소보다 어깨가 처져있다. 흔들리던 이를 뽑으러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라

힘든가 보다 생각하며 위로차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점점 내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은 남편이 아닌, 남편보다 더 나이가 든 낯선 할아버지 아닌가?

놀라 흔들던 손을 내리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편도 못 알아보다니, 요즘 부쩍 시력이 나빠졌다. 눈 영양제도 먹어 보지만 노화현상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오후에 치과에서 돌아온 남편과 마주 앉았다.

남편은 몇 년 전 해 넣은 임플란트가 잇몸이 약해지면서 흔들리던 어금니와 앞니를 빼러 치과에 간 것이다.

남편이 입을 다물고 있다.

‘이~ 해봐,’

남편이 입을 벌리지 않는다.

‘이~ 해봐,’

다시 한번 재촉하니

남편이 이 하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이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영구’가 연상되며 웃음이 빵 터진다. 겉으론 웃음이 나오지만 한 편으로는 한없는 연민이 인다. 나는 남편보다 세 살 어리지만 몇 년 전부터 틀니를 착용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모든 것은 자연이라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 늙는 것, 죽는 것 모두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이다.

그저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것,

자연에 순종하는 것 또한 인간이 지켜나갈 덕목이 아닌가.


며칠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바퀴 달린 의자에서 일어나다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했다는 소식 등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 친구들의 입원 소식이 종종 들린다. 나 역시도 병원 갈 일이 종종 생긴다.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육체의 고통을 자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로운 늙은이가 되고 싶다.

요즘 읽고 있는 배철현 님의 ‘승화’라는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지구의 중요한 자산인 인간도 우주의 시민답게 당연히 변한다.

현대인들은 변화하는 인간을 ‘늙음’이라고 표현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늙음은 삶의 정수를 알게 되는 지혜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었는데 지혜롭지 못하다면, 이는 큰일이다. 그래서 히브리 시인은 ‘회색 빛 머리카락’을 지혜를 상징하는 면류관으로 표현했다.

늙음’이라는 영어‘aging’의 본래 의미는 ‘생동하다/영원하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늙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도 늙고 중년도 늙는다.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만물에게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자 특징이다. 만일 어떤 것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 변화도 멈춘다.'


시력이 나빠져 엉뚱한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어도 아직은 책을 볼 수 있는 내 눈에 감사하고, 틀니를 착용했어도 아직은 음식을 씹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아니한가!

그뿐인가, 오늘 아침에는 앞니 빠진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미국에 사는 아들 가족이 영상 통화로 위로해 준다. 12살 손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할아버지를 안타까워한다. 우리의 늙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상냥한 며느리와 아들, 손주들이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저 나이에 맞게 매사 신중하게 행심행도(行心行道) 바로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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