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고유의 화창한 날이다. 남편과 산책길에 오른다. 며칠 전까지도 길가를 붉게 물들였던 영산홍은 지고 새로 피어나는 하얀 수국이 탐스럽다. 꽃들은 자기 때를 알아 조용히 피고 진다. 참 기특하다.
오늘은 이웃 아파트 둘레 길을 택했다. 둘레 길을 걷고 나서 운동 기구가 있는 곳에서 기구운동을 한다. 남편이 먼저 허리 돌리는 기구에서 운동을 시작한다. 마침 남편의 맞은편 기구가 비어 있기에 나도 그 기구에 올라 운동을 시작한다. 남편과 마주 보게 된 것이다. 오늘따라 미세먼지도 없이 하늘이 아주 파랬다. 맑은 공기를 깊이 마시고 싶은 마음에 마스크를 내리고 심호흡을 하려는 순간 내 얼굴을 본 남편이 “왼쪽 콧구멍에 코딱지 떼” 나는 민망한 마음에 얼른 마스크를 다시 올리고 남편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왼쪽 눈에는 눈물이 질금 배어 있다. 이때다 싶어 “당신도 눈물이나 닦아요.”
“나이가 드니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눈물이 나네.” 하며 눈물을 닦는다.
“우리 왜 이렇게 지저분한 늙은이가 되었지, 코딱지에다 눈물에다.”
나는 코딱지의 민망함에 남편의 눈물을 끌고 와 상쇄시킨다.
요즘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에 있는 낯선 할머니 때문에 놀랄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세수도 안 한 구질구질한 할머니 모습에, 어느 날은 흰머리에, 어느 날은 주름진 얼굴 때문에, 어느 날은 늘어진 목주름 때문에 놀란다. 그뿐인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방귀가 새어 나와 나를 당황시킨다. 젊은 시절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어떤 할아버지의 방귀 소리에 놀란 적이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 들면 괄약근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시어머니 살아 계실 때 일어서고 앉으실 때마다 ‘아이고 구구’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이제 이해가 간다. 나도 시어머니와 똑같은 소리가 저절로 나오니 말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자.
대머리가 된 남편도 예쁘게 봐주자. 백내장 수술로 인해 눈물이 질금질금 배는 남편의 모습도 측은지심으로 사랑해 주자.
거울 속의 주름진 할머니 얼굴도 미소로 반겨보자. 험난한 인생길 잘 헤쳐 온 대견한 모습에 손뼉 쳐주자. 매일 내 손으로 사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자.
제일 편한 사이라고 남편 앞에서 세수 안 한 얼굴로 있지 말자.
할미꽃이라도 꽃은 꽃이다. 하얀 솜털 속에 감추어진 짙은 자주색 꽃잎처럼 내 속에 열정이 아직 있지 아니한가!
문득 피천득 님의 “오월‘ 이란 수필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내 나이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