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심장 판막수술받은 후 1년에 서너 번씩 정기 검진을 받는다.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는 먼저 도착해야 한다. 도착하면 먼저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아 놓고 예약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 로비의 환자 대기실은 항상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들로 붐빈다. 나는 그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 있으면 내 마음까지 우울해 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에 병원 뒤뜰로 나온다. 내가 다니는 세브란스 심혈관 병원 뒤뜰이 연세대학교 음악 대학이다. 음악 대학 앞의 벤치에 앉아 잠시나마 바람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진 음대생들의 악기 연습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해 본다. 그러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그다음 대학 캠퍼스를 천천히 걸어 본다. 싱그러운 청춘들 속에 끼어 걸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나의 젊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바람결에 지나가버린 청춘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오늘은 같이 와 준 남편과 손잡고 제중관 뜰을 거닐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이곳에 오면 실감한다. 지난여름 무성했던 나뭇잎을 다 떨구고 나목이 된 을씨년스러운 모습의 겨울나무를 보며 저 나목이 지금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자식들 모두 자기 둥지 만들어 나가고 빈껍데기 둘이 아직은 괜찮다고 우기며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오늘 같은 날 같이 와 줄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있어 다행이다.
내가 수술받던 날도 나 때문에 마음 아파했던 사람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