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후대책은 공부다.

배움의 발견

by 민정애

나의 노후대책은 공부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가슴이 먹먹하다.

책의 제목은 ‘배움의 발견’ 작가는 ‘타라 웨스트오버’

2018년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 한 책이다.

부모의 잘못된 종교관이 자식들을 얼마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읽는 동안 안타까움과 분노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의 부모는 공교육을 사탄이라 여기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지고 뼈가 부러지고 공사장에서 떨어져 뇌진탕이 되어 동공이 풀렸는데도, 심지어 기름통의 폭발로 심한 화상을 입어도 주님의 뜻이라며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의학과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된 세상, 그것도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아직도 이런 무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무지와 편견에 의해 희생당하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처절한 일상은 읽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작가는 이 집의 7남매 중 막내딸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며 가족들을 동원해 산속에 자기들만의 비상식량, 땔감 등을 준비한다. (종말이 오면 비상식량은 왜 필요한가?)

어린 딸은 가족 간의 권력과 폭력에 시달리며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피로 물드는지 매일 살피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열여섯 살 까지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집안에서는 부모님의 묵시 하에 오빠의 폭력에 시달린다. 그날도 둘째 오빠에게 심하게 폭력(두 손을 뒤로 꺾은채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는) 당하는 모습을 이 집에서 유일하게 집을 떠나 혼자 힘으로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보게 된다. 셋째 오빠는 타라에게 속삭인다.


“집을 떠날 생각은 없니?”

“떠나서 어디로 가게?”

“학교, 내가 간 곳으로 가. 대학으로 가는 거야, 넌 할 수 있어 집 밖의 세상은 넓어,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그때부터 타라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들을 모두 비우고, 자기만의 배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ACT (미국 대학 입학시험 중 하나)를 거쳐 브리검 영 대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의 여정이 눈물겹다.

학위를 받았음에도 아버지는 타라를 인정하지 않는다. 주님의 뜻을 거역한 타라의 앞에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럼에도 가족과의 화해와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인간다움이 내 마음을 울린다.


“오래된 불만들을 끊임없이 들먹이며 탓하기를 멈춘 후에야, 아버지의 죄와 내 죄의 무게를 견주는 것을 멈추고 내 결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등식에서 완전히 뺀 후에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나는 자신을 위해 내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그럴 만큼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타라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케임브리지의 학생 이면서도 내면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자신도 함께 있었다.

이 두 갈레의 정신적 고통이 항상 따라다녔다.

어느 날 그 상처 많은 소녀를 떠난 보낸 장면을 이렇게 썼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 들이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내가 그때까지 해 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책의 거의 말미에 있는 위 내용을 읽고 나는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잘 지키고 살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어머니는 이래야 한다는 관념이나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라도 내 정신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공부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남이 만들어 놓은 인습에 의해 또는 잘못된 종교관에 의해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외부의 부당한 권력이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교육을 통한 배움, 독서를 통한 공부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의 소유권을 남에게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타라뿐 아니라 지금도 부모나, 남편, 시부모, 직장 상사, 정치인 등의 무지와 편견 고집 아만 등으로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올바른 자아를 찾아가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내 나이 68, 지금 이 순간 후회되는 점이 참 많다. 바로 배움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그저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물질을 앞세우고 정신의 허기를 채우는 일을 항상 뒤로 미뤄두었다. 공부는 돈 번 다음에 해야지 하며 거꾸로 살았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고 우겨본다. 배우는 데 늦은 때는 없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해진다. 나의 노후대책은 공부다. 내 역사는 바로 내가 써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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