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장소

by 민정애

루소에게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해 주고 그리움을 남겨준 장소는 비엘 호수 가운데 있는 생피에르 섬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그리움에 장소가 있다. 기회가 있다면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내륙으로 여섯 시간 정도 들어가면 캘로우나 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오카나간 호수를 끼고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선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다.

그곳은 30년 전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과 처음 영어연수를 갔던 곳이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둘을 유학시키고 자주 가보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했다. 생각 끝에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학생들과 함께 연수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영어연수라는 프로그램이 대중화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캐나다 대사관의 교육관을 찾아 학교를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떠났다. 컴퓨터 메일이란 것도 없을 때이니 팩스로 캐나다 학교와 연락하며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 일을 해 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고 나 자신이 무척 대견하기도 하다. 그때 느꼈던 문화 충격이란.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참 생경했었다. 홈스테이 주인이 마트에서 이혼한 전 부인과 그녀의 새로운 남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얼마 동안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을 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 남자들이 집안일은 물론 요리까지 척척 해내던 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 대는 사랑 표현. 스카이 츄레인 탈 때 운전사와 검표원이 없었던 일, 우리 식대로 아이들 엉덩이를 두들겨 주어도 성추행이라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일 등. 30년 후인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때 내가 목격했으니 얼마나 문화적 충격을 받았겠는가.


우리 학생이 가져간 김치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냄새 때문에 문을 열 수가 없으니 나보고 와서 해결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급히 그 학생 홈스테이로 달려갔던 일.

또 한 학생이 가져간 김치가 여행용 가방 안에서 터져 김칫국물이 새어 나온 것을 보고 홈스테이 주인이 학생이 애완동물을 가져오다가 가방 안에서 죽은 것 같다고 놀란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했던 일 또한 나를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리운 장소가 있다. 그곳에 머물렀던 3주 동안 나는 매일 경이롭도록 신비한 아름다운 저녁을 맞이했다. 황금빛 노을이 물든 저녁이 찾아오면 아름다운 호숫가 산책길을 거닐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집 대부분이 형광등으로 조명을 하는데 그곳은 거실이나 방의 조명이 거의 노란 백열등이었다. 어슴푸레 어둠이 깔리는 동시에 호숫가 숲 속의 집집마다에서 비추어지는 노란빛 따뜻한 조명들은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하고 행복한 곳으로 데려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황홀감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때 그 산책길에서 내가 사유했던 끝없는 감사함을 잊을 수 없다.


‘인생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큼 값진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던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자연스럽게, 완전히 자신만의 즐거움에 도취되었던 때라고 답하겠다.’라고 말한 영국 작가 레슬리 스티븐의 말에 공감한다.


나에게는 바로 그때가 나 자신만의 즐거움에 조용히 도취되어 가슴으로부터 끝없는 감사함이 피어올라 왔을 때임에 틀림없다. 온전한 내 힘으로 해냈다는 그때의 성취감 또한 잊을 수 없다.


그 후 여러 번의 연수 때마다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고 많은 실수도 했고 예상치 못한 일들로 당황한 적도 있었던 나의 용감하고도 사랑스러웠던 젊은 시절. 오늘 깊어가는 가을 모처럼 들른 도서관에서 루소의 마지막 작품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고 ‘산책 중에 고독과 사색의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내가 나 일수 있는 시간’이라는 문장을 읽고 내가 나일 수 있었던 시간인 오카나간 호숫가의 산책이 문득 떠올라 컴퓨터 앞에 앉는다. 깊어가는 가을 짙게 물든 단풍들이 나를 사유하게 했던 고혹적인 오카나간 호숫가 저녁 산책길로 나를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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