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 Mar 26. 2024

테크 세미나 대신
장애학 세미나를 듣기로 했다

 인턴 과정은 3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백엔드와 프론트엔드 두 가지 전형으로 나뉘어 총 10명의 합격자가 함께 했습니다. 인턴들에게는 실습과 이론 두 가지 유형의 과제가 매주마다 주어졌습니다. 예컨대 프론트엔드는 날씨를 안내해 주는 웹사이트의 로그인 로직을, 백엔드는 도서관 대출 서비스의 인증 로직을 구현해 PR(Pull Request)을 올립니다. 올린 PR을 토대로 해당 주차의 담당 멘토 두 분과 코드리뷰가 진행됩니다. 동시에 '인증(Authentication)'이라는 개발 관련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컨퍼런스 전까지 노션에 작성합니다. 컨퍼런스 때는 이렇게 한 주 동안 진행한 과제에 대해 멘토님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됩니다.

  저의 인턴 동기들은 저처럼 약간의 개발 경력이 있는 중고 신입부터, 컴퓨터공학 전공생, 그리고 개발 공부를 한지 한 달밖에 안 되는 비전공생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무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주어진 과제를 소화해 낼 수 있었습니다. 코드 리뷰로만 진행되었다면 몰랐겠으나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발표하는 점도 자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저를 당황스럽게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 공부에 대한 흥미가 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저에게 개발자로서의 가능성이 없다는 신호로 다가왔습니다. 비전공자에다 대학을 갓 졸업한 몇몇 동기들보다 나이도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또 새로운 분야를 찾아 나서 신입부터 시작하기엔 저는 이미 지쳐있었습니다. 혹시 프론트엔드라는 분야가 문제인 건지, 백엔드 공부를 해보면 괜찮아지는 건지 고민도 했습니다.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분야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하고 싶은 공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식어가던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를 보상하듯 비거니즘을 알아가는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비건이라고 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어색했던 그때, 저는 혹여라도 주변 지인들에게 비거니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매주 있던 컨퍼런스 발표 준비보다 더 신경 쓰였습니다. 

 매일 하루 세 번 무얼 먹을지도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떤 음식에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는지 검색해보지 않으면 몰랐으므로 한 끼 메뉴를 고르는데 전보다 갑절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과자 하나를 사도 영양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이 시간을 단축하는데 도움을 줄 검색 서비스를 찾는데 저의 온 관심이 쏠렸습니다.

 처음에는 마트에서도 빠르게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스캔 기능을 가진 서비스를 찾아보았습니다. 제품 성분 목록을 스캔하고 제품이 완전 채식인지 여부를 알려주는 my vegan scanner라는 유료 앱도 있었고 WhatsVegan라는 무료앱도 있었으나 모두 영어로 개발되어 있어 한국인이 쓰기엔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입력창에 직접 검색어를 입력하는 수고로움 정도는 감수해도 좋겠다로 기준을 낮추었습니다. 비건어게인과 비니티를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식품의약처에서 제공하는 식품영양성분 DB 공공데이터를 이용하는 듯 두 앱의 검색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공공데이터 특성상 빠르게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제품의 종류 자체도 한정적이라 불편했습니다.  

 누군가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에 문의해서 블로그에 기록한 글이 그나마 쓸만했습니다. 비건편의점 위키도 여러 번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이트에는 2022년 12월 31일 위키독 서비스가 종료함에 따라 운영을 중단한다는 안내문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비건 식당을 찾을 땐 happy cow와 비건 로드의 지도 서비스를 활용했습니다. 확실히 네이버 지도에 검색어를 입력해 찾는 것보다 시간이 절약되었습니다. 맛집을 일부러 찾아가는 편이 아니었고 지인들과 만나는 장소도 한정적이라 몇 번 검색해 보니 갈 만한 비건 식당의 위치를 대충 외우게 되었습니다.  


 비건 지향을 시작하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진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처음 3개월은 이 말이 크게 체감되진 않았습니다. 만난 사람들에게 비건 지향을 한다고 말할 때마다 따라오는 질문들의 유형은 제가 준비한 답변의 범위를 크게 넘지 않았습니다. 비건은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지, 그렇다면 미역이나 김도 먹을 수 있는 건지와 같은 질문부터 영양학적으로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읽었던 비건 관련 책마다 꼭 빠지지 않던 질문,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식물도 먹으면 안 되는 거냐는 질문 역시 때때로 받았습니다.

 이런 예상가능한 질문들보다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비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상대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비건을 지향한다는 말이 상대를 조금쯤 불편하게 만들 거란 사실을 짐작하긴 했으나 그걸 표정에 떠오르는 미세한 어색함을 통해 보는 건 또 다른 새로움이었습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대화하는 일은 저도 난생처음이라 어쩔 줄 몰랐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같아 보였습니다. 

 제 안에는 처음 옹알이를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를 들어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카페라떼를 시킨 친구 앞에서 하기엔 적절치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10년 지기 친구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었습니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도록 저를 움직였습니다. 개발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였으므로 되도록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좋을 것 같은 모임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비건 식당 같이 가기 모임을 문토라는 소셜링 앱에서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는 어려워 보여 다음으로 환경 관련 독서 모임에 나갔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즐기는 성향이 아니라 이 시도들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건을 지향하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건 함께 어울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 동료들을 뒤로하고 홀로 회의실에 들어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는 일이었습니다. 회식 날 회식장소를 미리 팀장님께 여쭤보고 소고기집에 전화해 다른 음식을 싸가도 되는지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소고기가 구워지는 불판을 앞에 두고 포장해 온 샐러드를 주변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견디며 먹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 지향은 제가 상상한 이상의 만족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제가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회식 때 샐러드를 싸가는 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도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습니다. 비건 음식을 궁금해하고 한 끼 정도는 먹어보고 싶다고 호의적으로 말해주는 지인을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저처럼 비건을 지향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건 한승태 작가를 초청한 흉폭한 채식주의자 팝케스트 편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한작가님이 쓴 닭, 돼지, 개농장에서 축산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인 <고기로 태어나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작가님께 누구보다 축산농장의 잔인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도 채식주의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행자가 물었습니다. 

 작가님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축산농장은 도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지방에 있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나면 그곳의 노동자들에겐 시간을 보낼 만한 오락거리가 딱히 없습니다. 그래서 간혹 가다 있는 술자리가 그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낙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자고 저는 말 못하겠다고.


 대부분의 농장에서 나와 함께 일한 한국인 직원들은 장성한 자식들을 둔 60대 남자들이었는데 첫날 저녁이면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자기가 ‘이 나이에’, ‘이런 데서’ 일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곤 했다. 
 은퇴할 나이가 지나서도 일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었다. 첫째, 자신은 모아둔 돈이 충분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갑갑해서 일할 뿐이라는 사람(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둘째, 자식들이 돈을 벌지 못해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는 사람. 하지만 나는 두 부류의 실질적인 차이는 경제력이 아니라 자존심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다.

 447쪽, 고기로 태어나서


 대부분의 농장에서 한작가님과 일했다는 60대 남자들이 왜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얼추 짐작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하는 노동이 우리 사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할 나이가 지나서도 일하는 제 아버지 또래의 남성들이 한작가님에게 묻지도 않은 자신의 사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게 한 힘은 제 삶에서도 익숙한 압력을 주는 무엇이었습니다. 그 힘이 저를 적성에도 맞지 않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를 필사적으로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턴기간을 지나 수습기간을 마무리할 때까지 개발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저의 시도는 여전히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좋은 사수가 있고 재택근무가 있으며 50명 이상 규모의 개발팀이 있는 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규직 계약서를 받았을 때 다음 회사로 이직할 때까지 앞으로 2-3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가 어느 날 문득 영감처럼 올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간혹 그런 허망한 생각을 하던 차에 같이 일하던 팀리더로부터 시니어가 되면 컴퓨터 공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거란 조언을 듣고 방통대에 편입했습니다. 어차피 뭘 하든 특별히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크게 떨어지는 것도 없었습니다. 저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적성이니 흥미니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개발 공부였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꼭 직장에서 찾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논리가 개발이라는 직군에서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간간히 엄습했지만 애써 무시했습니다. 

  비건을 지향하는 일이 특권처럼 느껴지고, 주변으로부터 고립감이 깊어질수록 걷잡을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지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비거니즘과 동물해방운동에 기여하는 일은 매일 하는 개발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 같이 느껴졌습니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다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빠르게 돌아가는데 저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다는 회의감만 들었습니다.

 그즈음 제가 1년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읽기 모임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아 추가 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님이 함께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장애와 철학에 관련된 도서들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프로그래밍과 전혀 상관없는 공부에 시간을 쏟는 일은 여전히 사치로 여겨졌으므로 공고가 올라왔을 때 저는 황급히 제가 이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비건을 지향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비건에 대해 알게 해 준 홍은전 작가님은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 13년 장애운동의 현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눈에는 동물들의 처지가 문제로 보였다. 그건 어쩌면 장애운동이 말하는 것이 동물해방운동이 말하는 것과 공통분모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장애학을 공부하는 일은 지금 나에게 절실한 문제인 동물해방운동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좀 허술하지만 주변 지인들에게 왜 개발자인 제가 하고 많은 테크 세미나 대신 장애학 세미나를 들으려고 하는지 그 동기로 설명하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물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저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였습니다. 정규직이 되고 나서 이미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는 시간은 전보다 확연히 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질책하지 않았음에도 저는 프로그래밍 공부에 게을러진 것에 대해 지속적인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내일도, 모레도, 다음 해에도 계속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동물해방운동에 프로그래밍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만약 동물해방운동이 아니라면 그와 비슷한 영역에서라도, 그러니까 조금쯤 사회가 나아지는데 기여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장애운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온전히 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저의 장애학 공부는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프로그래밍 공부가 아닌 딴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제가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 가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11쪽, 고기로 태어나서
이전 03화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