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열린 창

프라도 미술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아름다움이

by 굴히

교환학생 신분으로 마드리드에 머물며 누린 최고의 호사는 단연 프라도 미술관이다. 노트와 연필, 지갑과 열쇠 꾸러미 정도로 가벼운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기차역 하나, Estación del Arte, 곧 '예술역'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하철역 하나, 노상 서점이 늘어선 길목과 식물원을 차례로 지나면 프라도에 도착한다. 걸어서 25분 거리에 세계 3대 미술관이 있다니, 커다란 꿀단지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별달리 할 일이 없는 날에도 습관을 들인 걸음은 신라 장수 김유신의 말처럼 나를 미술관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림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 때에는 동네 빵집에서 페이스트리를 사들고 고야 문과 헤로니모스 문 사이 언덕진 잔디에 털썩 앉아 책만 읽다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여러 번 가벼운 접촉이 쌓이며 친밀해졌다. 한 도시에서 중심적인 상징성을 지니는 장소가 어렵지 않게 느껴지니 도시와도 훌쩍 가까워진다.




"Hola. Una entrada de estudiante, por favor."

(안녕하세요. 학생 입장권 한 장 주세요.)


서툰 스페인어를 발화하는 매표소가 시작이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사회가 학생에게, 곧 배움이 삶인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은혜를 즐겁게 누렸다. 경제적 혜택과 지리적 이점이 만나 소장품이 2만 점에 달하는 거대한 보물 창고로 향하는 걸음은 언제나 압박이 아닌 보물 찾기로 남을 수 있었다. 매 방문마다 관람료 15유로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면, 혹은 거리가 멀어 자주 방문하기 어려워 이 방대한 컬렉션을 단숨에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미술관 방문은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작품 섭렵하기' 숙제가 되고 말았을 텐데.


고야 문의 계단을 올라 티켓 확인과 소지품 검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입장 과정을 마치고 1층으로 들어선다. 둥근 형태로 된 미술관 중앙에 서서 이번에는 어느 복도로 먼저 들어설지 잠시 고민한다. 오늘 내게 먼저 다가올 작품을 위해 느긋이 마음을 열어두고 있으면 때마다 이끄는 손짓이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 대표 소장품 목록', '프라도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 목록'은 필요치 않았다. 내 심산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들리지 않았던 부름. 잘 알려진 작가와 작품에만 시선을 몽땅 바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벗어낼 것을 요구하는 초대이기도 했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곳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뭐든 비워두어야 했던 것을.


작품의 안내를 따르니 제한된 시간 내 관람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었다. 어느 날에는 한 시간만, 작품에 신경을 집중할 체력과 심력이 넉넉할 때에는 서너 시간을 훌쩍 넘도록 미술관을 누볐다. 그러다 지치면 아쉬움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번에도 나를 초대해 줄 그림이 남아 있음을 믿었고, 그림도 내가 그 부름에 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믿었기에. 작품이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떼어두기 시작하니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형태의 신뢰가 뿌리를 내렸다.


귀가하는 걸음에 머뭇거림이 없었던 것은 어느 미술관에든 이미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그림의 힘과 그에 매료된 사람들의 오고 감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전시실을 운행한다. 나는 그 위로 사뿐 편승할 뿐. 인위적으로 무언가 시작하려 들지 않아도 좋기에, 걸어 나오는 일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흐름이므로 나 하나의 하차가 전체를 일그러뜨리는 일 역시 불가하다. 자유로운 무력감을 입고 유동한다.




액화된 채 100여 개의 방을 탐험하며 로랭과 루벤스, 시몽 부에, 지아킨토, 벨라스케즈, 엘 그레코와 브뤼헐을 만났다. 시작의 이야기를, 신화와 상징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영원한 미(美)를, 고통과 두려움을, 소망과 평화를, 영혼을 비추는 유일한 광원을 목도한다.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전시실에 모여 있는 고야의 검은 그림들에서 위로를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스스로를 짓누르는 생각의 질주를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커다란 캔버스의 그림과 그들이 쏟아내는 기운에 압도당하기를 기대하며 미술관을 배회했다.


마음을 온통 빼앗은 작품들의 색채며 궤적이며 질감에 동일한 것 하나 없으나 결국 그 고갱이에는 자리한 것은 사람됨이다. 손상될 수 없는 자리에 보관되어 시간을 무력화하는 속성. 특유한 표현 내부의 보편과 관계 맺는 방식이, 그 사람됨을 껴안는 팔의 힘이 고유한 눈이 된다. 미술관을 나서는 시선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언제인가부터 0층 중앙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였다. 조용하고 검게 빛나는 몸. 그 소리가 궁금해 연주가 있는 시간에 맞추어 미술관을 방문했다. 후아네스의 <마지막 만찬>을 반사판 삼아 울리는 바흐의 토카타.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로 십오 여분을 가만히, 순환하는 연주를 들었다. 원형의 미술관 중심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둥근 모습. 아름다움의 울림통. 좌우가 없고 사방으로 열려 있어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작.


미술관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다. 제대로 보기. 온 힘으로 감각하기가 할 일의 전부인 장소는 많지 않아 귀하다. 몸을 커다란 창으로 만든다. 크게 숨을 마시며 문을 연다. 아름다움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가능성에 대하여 활짝 열린 창이 된다. 계획한 바 없으나 틀림없이.


관람의 효율은 안중에도 없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방식으로 탐미하는 동안 문을 열어두기만 한다면 필요한 그림이 정확히 필요한 때에 맞게 찾아올 것임을 믿게 되었다. 음악도 책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이루는 대부분의 레이어에서 그러하리라. 알맞은 때에 알맞은 모습으로 만나게 되리라.


때때로 좋은 것을 이미 다 소진해버렸을까 봐, 앞으로의 삶에 남은 몫이 없을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꽃과 계절을 믿는 마음을 데려온다. 산수유 다음 라일락, 장미와 금계국, 그다음 능소화가 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모든 아름다움이 그리하리라고. 편력하는 걸음이 그다음번 좋음에 나를 데려다 놓을 것임을 힘주어 믿으며 간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