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신기루 같은 시간을 저며 붙이며

by 굴히
"사물을 주어지는 대로 찍지는 않습니다. 뭔가 내 개인적인 의식이, 정신이 반영되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이미지에서 시구를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 R. J. 월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中




좀체 무언가 버리기가 어렵다. 지니고 다니는 수첩은 갈피마다 온갖 티켓과 카페의 비즈니스 카드, 친구들과 낙서한 작은 메모가 잔뜩 끼워져 늘 배부른 상태다. 책장 맨 아래칸의 종이 상자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모은 편지와 엽서가 가득하다. 미술관의 팸플릿, 여행지에서 방문한 서점의 영수증, 리스본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을 찾으려 두리번거릴 때 친절한 노신사께서 건네 주신 지도까지, 지나간 교류를 증명하는 시간의 기념품을 다람쥐 도토리처럼 양볼 가득 모아두고 있다.


물론 이 기념품들은 진즉 사용 가치를 상실했다. 나는 더 이상 길을 찾는 데 종이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을 테다. 대신 그 지도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와 다른 목적지로 향하던 우리의 길이 그날 잠시 교차하였다고, 기억을 그리는 작업에 우리가 공동 참여한 사실을 증명하는 물증으로서 새로운 상징이 된다.


상징(象徵, symbolise)의 어원은 희랍어 'sumballein'에 있는데, 이는 'to put together', 'to join'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sumballein'의 명사형 'sumbalon'은 헤어지며 한 물건을 반으로 나누어 가졌다가 이후 재회하였을 때 각 반쪽의 '짝을 맞추어 보고' 서로를 알아보았던 징표를 이른다. 곧 하나의 물체이되 물체 이상의 역할과 의미를 가지는 것. 인지되기를 바라며 관념을 담는 그릇. 상징은 요란하게 소리치지 않는다. 다만 의미와 맞붙는 순간 분명한 설득력을 가지며 흩어진 둘을 하나의 장면으로 잇는다.



가장 붙들어두고 싶은 상(像)은 흩어지는 성질을 가졌다. 햇살이 눈동자에 비스듬히 내려앉는 방식, 낯선 이의 미소 띤 주름, 어는 바람에 붉어지는 아이들의 뺨이라든가 영원에 도전하는 부부의 깍지 낀 손 같은 것들. 빛나는 모습은 입장권도 영수증도 남기지 않은 채 기억의 생산 속도를 가뿐히 추월해 사라진다. 그러한 고로 부옇게 내쉬는 숨 같은 장면들을 찍을 때는 더욱 간절해진다.


그해 연말에는 뮌헨을 거쳤다. 북적이는 마리엔 광장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간격을 가늠하며 시청 시계의 목각 인형을 바라보다 영국 정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독일의 겨울은 으레 잿빛일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뮌헨은 맑은 하늘을 보여주었다. 건물 그림자가 길게 누운 거리를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한겨울의 해바라기처럼 헤어질 것이 남은 사람처럼. 그 겨울에 환한 것은 모두 우리 뒤편에 있었으니까. 빛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했고 매초 달라지는 거리의 얼굴은 찰나마다 그리워지는 표정이었으니까.


빛을 찍기에 참 좋은 날이라 생각하며 도착한 정원은 기울기 시작한 볕의 색과 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엉긴 옅은 금빛에 잠겨 있었다. 빛무리에 번진 만남들을 프레임 속에 욕심껏 잡아다 넣으며 이 희뿌연 상을 오래도록 선명히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앗 눈부셔, 하며 찡그리던 눈가로 화상처럼 찬바람에 무뎌지던 셔터 버튼 위 손가락으로 동상처럼.



사진을 통한 소유는 절대로 완전하게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영영 놓쳐야만 하는 때가 도래했을 때 그 잔해만이라도 쥐어보려는 손짓이 아닌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조리개 셔터를 작두날로 삼아 철컥철컥 내리누른다. 아름다운 신기루의 표면을 얇게 저며 시간과 짝짓는다. 통각처럼 살아있는 하루가 저무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숨이 빠져나간 허물이나마 가지려는 마음으로 찍는 사진은 일종의 압화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에는 능동적인 사람이 된다. 뷰파인더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반쪽이나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많이, 더욱 자세히 본다. 소멸을 향해 끝없이 투신하는 장면들. 카메라를 든 채 사라짐의 가장자리를 더듬어 사진을 건져낸다. 어리석고 성실한 수집의 반복으로 찰나에 흔적을 지어 입힌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느끼면서, 카메라 속 작은 거울에 비친 반영(反映)을 모아다 한 발짝 늦게 따라올 기억과 맞대어 볼 반쪽을 만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