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의 우연

by 마디


출근 두 시간 전, 등에 멘 백팩엔 가기 싫은 마음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어김없이 2층에서 멈춘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소문난 추어탕 맛집이 있기 때문이다. 2층에선 언제나 다양한 스타일과 무리의 어르신들이 탄다. 문 닫힘 버튼에 민감하지 않고,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확인하지 않는 쿨한 사람들. 가끔 오피스텔 층으로 올라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1인 가구 천지인 이 건물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추어탕집 손님들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웅성웅성 소리가 더욱 가득해진다. "뭐야~ 우리 올라왔나 봐~" "어머 위층은 사람 사는 덴가 봐~" 2층에서 다시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미 꽉 찬 내부를 보고 당황한다. 원래 있던 이들은 넉살 좋게 거리를 좁히며 "타셔, 탈 수 있어"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그들은 마치 한 테이블에서 식사한 것처럼 이를 쑤시며 어디 식당보다 맛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열린 2층 엘리베이터엔 할머니 두 분이 탔다. 계산한 지갑을 가방에 넣으며 한 할머니가 말을 꺼냈다.

잘먹었어요~

다른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리고 대화는 짧게 이어졌다.

나두.

영화도 잘봤네~

나두. 재밌는 영화였네.

우리 또 이렇게 같이 가자~

평소완 다르게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는 금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고작 한 층이 내려가는 동안 그 두 사람의 우정이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나의 미래에도 그런 우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떤 영화를 봤을까? 최근 천만 관객에 도달한 <왕과 사는 남자>를 본 걸까? 혹시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좋아해서 함께 <햄넷>을 보러 갔을까? 그런 상상은 무게만 가득했던 하루의 시작을 조금은 설레게 만들었다, 1층에 도착한 그 둘은 다정하게 건물 밖으로 걸어갔다. 누군가의 우정으로 충전된 마음이 바깥의 쨍한 햇살을 받으며 맑게 흩어졌다.


찬 바람과 함께 떨어졌던 기온이 오늘부터 쭉 올라갈 예정이라고 날씨 앱은 말한다. 빨간 가디건을 꺼내입을 날이 머지않았단 사실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빨간색을 입으면 왠지 자신감이 생긴다. 화가 부족한 나의 사주를 보완해 주는 덕분인진 몰라도 밝은 빛을 보면 왠지 소풍날 아침 집에서 나온 것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한참 동안 기다릴 수 있는 그들의 여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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