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될 것 같은 희망에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좌절됐다. 기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실망감을 가득 떠안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 다가오는 감정을 잘 달래어 보내는 것뿐.
한껏 축 처진 상태로 출근했다. 감정을 철저히 숨기는 것, 사회적 웃음을 장착하는 건 역시 어려웠다.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온 걸 다행이라 느낄 정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밥을 먹으며 기대에 걸었던 모든 계획을 어찌 새로이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골몰했다. 그러던 중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안 됐어
-그래 괜찮아 원래 그런 거니까 계속해 봐
반나절 동안 묵직하게 간직하던 마음이 금세 가벼워지는 듯했다. 대화 내용은 어느새 여름에 가게 될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저버린 기대는 그대로 저버리고 다시 새로운 기대와 손잡는다. 마음엔 어느새 여행에 대한 기대만 가득할 뿐이었다. 내 안에 가득 들어차 환기되지 않던 것들은 어느 순간 날아가고 없었다.
저녁엔 친구가 찾아왔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와서는 손님인 척 말을 거는 그를 알아보자마자, 놀란 마음과 함께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그의 얼굴과 그가 건네준 달달한 커피에 마음속 무언가가 분명 사르르 녹아내렸다.
평소와 다르게 아침 일찍 글을 쓰고 충만해졌다가, 기대와 다른 소식에 실망감을 한껏 느끼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다시 배시시 웃게 되었고, 지금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은은한 빗소리에 집중한다. 덩달아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퍽 괜찮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