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갈등과 대립관계에 놓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싸운다. 그 싸움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갈등의 모양은 틀리지만 싸움이 되는 이유는 "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이다. 각자 모두 그렇게 생각하기에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사회적으로 모범적으로 살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살면서 " 당신은 틀렸다"라는 말을 듣고 산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러면 더더욱 자신의 생각과 고집은 확신으로 굳혀진다. 항상 자신이 틀린 선택을 하지도 않고 틀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마디로 자기 착각이고 오만이다. 그러니 당연히 배우자를 비난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대부분의 부부싸움의 시작이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의 소견임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나에게 좋은 것이 상대에게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다. 그래야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와 배우자는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거기다 태어나 자란 환경도 다르고 부모의 양육방식도 다르다.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도 다르고 주변의 인맥도 다르다. 원하는 사랑도 받고 싶은 사랑도 모두 다르다. 거기에 따른 삶의 태도나 가치관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다르게 행동하고 말한다. 이 다름을 자꾸 "나쁘다 틀렸다"하기에 우리는 자꾸 싸우는 것이다. 이 진리만 깨달아도 모든 인간관계가 편해진다. 배우자 뿐만아니라 내 뱃속에서 태어난 자녀도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해도 육아는 달라진다. 배우자와 자녀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된다.
운좋게 남편과 나는 이 사실을 좀 일찍 깨달았다. 그전엔 우리도 다른 부부와 같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충돌을 꽤나 심하게 겪었다. 살다보니 남편과 나는 한국사람이라는 것과 우리 모두 눈코입 달려있고 사지가 멀쩡하는 것 외에는 정말 하나도 공통점이 없었다. 그러니 한때는 서로를 띁어고치려고도 하고 비난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이렇게 상대탓을 하면 할수록 관계는 끝없이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책을 통해서 인간의 다름을 배우게 되었고 남편 또한 우리의 다름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린 평소에 대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우리였기에 "그래.. 내가 틀릴 수도 있지. 그건 오로지 내 입장이니까" 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
늘 어딜가나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고 궁금한 것 많고 뭐든 직접 해보고 맛봐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밖에 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방전되고 특별히 궁금한 것도 없고 도전도 싫어하는 지극히 안전지향적인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관심있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나와는 달리 세상 모든 자극이 예민하게 다가오고 신경쓰고 주변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조금씩 양보하며 완전히 다른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순환이 된 이해는 이제 톱니바퀴 맞물리듯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나는 남편에 대해서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그건 세월을 살다보면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자신을 다 안다는 것 그리고 상대를 다 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착각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매우 무지할 때가 많다. 결혼을 하면서 몰랐던 내 모습을 볼때도 너무 많았고 남편도 마찬가지 였다. 그렇게 마치 동굴에서 금은보화를 찾듯이 각자는 각자의 모습을 찾아가고 서로를 찾아가고 있다.
신혼초엔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과 생경함이 우리 사이에 갈등을 일으켰다면 세월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나에게 없는 남편의 특성들은 내 삶의 빈틈을 채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특성 대부분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부부는 서로 비슷해야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음과 양이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질때 완전한 합이 이루어 지는 것과 같은 이치임을 살면서 느낀다. 그 시작은 나의 빈틈을 인정하는 것이고 배우자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였다. 이제는 서로의 다름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관계는 당연히 좋이질 수 밖에 없었고 우린 함께 하루종일 붙어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짝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