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남편과 나는 효자나 효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이 부부관계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가족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부부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특별히 한국사회에서는. 고부간 장서 간이 갈등이 이혼사유 3-4위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혼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이전까지는 내 부모형제가 일 순위였다면 결혼한 후엔 배우자와 내 자녀가 일 순위가 되어야 하는 변화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선수위의 변화는 부모와 형제에게 적잖이 서운함과 충격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이런 변화가 서로간에 당연한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결혼하는 당사자도 가족들도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님께 의존도가 높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의 경우 원가족과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 사이에서 갈등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랑은 결국 우선순위의 싸움이다. 나를 일순위로 여겨주지 않는 배우자를 믿고 신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과 나는 효자도 효녀도 아니었다. 미국오기전 나는 부모님께 순종적인 편이었으나 미국으로 시집을 오게 됨으로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심리적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로 얽히기엔 너무 멀리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원래부터 시부모님에게 고분고분하거나 순종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부모에게라도 다 하고 살던 사람이었다. 어른들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기에 시부모님도 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일절 간섭이 없으셨다. 때문에 우리는 부부생활에 있어서 우리 문제 말고 시댁이나 친정 일로 싸울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말은 남편이나 나는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정과 선택에 있어서 우리 둘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다른 가족의 입김이나 강요로 인한 것이 거의 없었다. 신혼초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착이 되었다. 한마디로 서로가 서로에게 일 순위였다. 이것이 2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살다 보면 때로는 싸우고 미워질 때도 있었지만 나를 일순위로 여겨주는 배우자에게로 다시 돌이키게 했다. 그래도 세상에 내 편은 나의 배우자인 것을 우리는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태도를 시댁도 친정도 너무나 잘 알기에 며느리에게도 사위에게도 터무니없는 기대나 요구가 없으셨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관계 안에서 사소한 오해나 섭섭함이 없어서 시간이 갈수록 시댁과 친정 모두 적당한 거리에서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시댁이나 친정 모두 그 나이에 다들 한 번씩 고민한다는 자녀의 이혼이나 결혼문제로 집안에 걱정을 끼치지 않고 다복하게 사는 우리에게 무척 고마워하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질서 가운데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면 할수록 관계에도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소위 말해서 모든 관계에서 어느 정도 선과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선의 수위는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진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면 자신의 우선순위를 반드시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배우자와 함께 조율하고 조정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많은 부부들이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해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짝꿍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존재는 부모님도 아니도 자녀도 아니고 배우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항상 그 누구보다 배우자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20년간 매일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도 나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항상 알고 있다. 그 사랑의 신뢰가 우리 결혼생활의 가장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