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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 된 남편

by 원정미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별히 이루어 논 것도 없도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돈을 잘 벌지도 못했고 명예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훌륭한 엄마가 되지도 못했다. 그저 나는 중간 그 어디쯤 수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단 하나 내가 이 세상에서 상위 1% 안에 드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부관계.


부부사이가 좋다는 말을 우리가 살면서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사이좋은 부부란 싸우지 않는 부부가 아니다. 그저 싸우지 않고 외도만 하지 않으면 잘 산다고 생각한는 것은 큰 오해이다. 싸우지 않고 한집에서 한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정서적으로 이미 이혼하며 살고 있는 부부들을 많이 보았다. 부부관계의 질은 대화의 수준이고 갈등 해결 능력 수준이며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의 수준이다. 이 부분에서 어느 하나라도 만족스러운 수준이 되지 않느다면 사실 사이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억압과 회피의 상황을 버티고 사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이좋은 부부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다.


김창옥 강사님의 유쾌한 강의를 듣다 보면 " 한국에 놀랍게도 사이좋은 부부가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한 10쌍 정도 있다네요"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때마다 속으로 " 저요 저요!"를 외친다. 물론 설마 정말 10쌍 정도만 행복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요즘 세상에서 사이좋은 부부를 찾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혼율뿐만 아니라 비혼율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때론 참 안타깝다. 건강하고 친밀한 부부관계란 어떻게 보면 나의 노후의 삶의 질과 건강에 가장 확실한 투자처인데 말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어도 노년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인간에게 사랑과 애정에 대한 갈구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신뢰와 애정으로 맺은 깊은 관계는 사실 행복과 에너지의 근원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이런 관계의 여부에 따라 행복도와 건강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에게 남편은 이제 남편을 넘어 그야말로 찐친, 짝꿍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내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우린 무서울 것이 없었다. 무엇을 해도 즐거웠고 뭐든 나눠주고 싶었고 심지어 학교에서 벌을 받거나 비를 맞고 집에 와도 괜찮았다. 그냥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좋았다. 짝꿍은 그런 존재였다. 나는 남편과 지금 그런 짝꿍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대화가 잘 통하고 시덥잖은 농담에서 심각한 주제까지 어떤 대화든 가능하다. 그러니 대부분의 갈등과 문제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여전히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함께 밥을 먹어도 TV를 봐도 여행을 가도 산책만 해도 재밌다. 우린 서로의 웃음 코드를 너무 잘 알고 있고 서로를 웃겨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척하면 착하고 받아준다. 그러니 함께 있을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지고 그는 가장 그다워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남편과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이 되었고 남편도 그렇다.


나 또한 결혼 전에 부부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사이좋게 사는 부부를 사실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고 자란 부부들은 모두 서로 굴림하거나 통제하려고 했고 그러다 죽일 듯이 싸우고 포기해 버린 관계가 많았다. 그런 모습만 보고 자란 내가 어떻게 이 경지 혹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사실 이렇게 사이가 좋아진 데에는 우리 부부만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에피소드들을 앞으로 이 책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혹시 막연히 결혼과 부부관계 두려움이나 걱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그 기분을 희망과 유쾌함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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