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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깔보지 않는 것

by 원정미

나와 남편의 관계에서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 것은 우리는 서로를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를 무시하거나 마음속으로 깔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무시의 뉘앙스와 태도, 말투를 느끼지 않는 배우자는 없다. 사실 이런 비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도 하다.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타인을 비교를 하고 또 언제나 자신의 우위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의 단점이나 취약점들을 쥐고 흔들면서 자신이 그/그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특별히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외모, 학벌, 경제력 등등은 너무나 쉽게 드러나며 비교하기도 쉽다. 그래서 소위 " 능력도 없으면서 고집만 세다." "무식해서 대화가 안된다" " 공부를 못해서 교양도 없다" " 뚱뚱하고 못생겼다" 등등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배우자를 무시하면 할수록 상대 배우자도 사실 참지 않는다. 그/그녀도 상대의 약점을 기어이 찾아내고 무시하려고 든다. 이렇게 서로의 단점과 약점을 기를 쓰고 찾아내는 부부관계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주변의 가족들까지 부부를 판단한다. "남편이 아깝네. 아내가 더 낫네. 또는 집안이 한쪽으로 너무 기운다"는 등의 비교를 서슴지 않고 쏟아낸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잣대로 배우자를 비교하고 판단하면서 무시하는 발언을 할 때가 많다. 이런 비교와 무시의 발언들이 부부 사이의 갈등과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의 경우도 그런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 덕분에 대학원 학위가 2개나 있고 남편은 대학교 중퇴이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집에 있는 수백 권의 책들 대부분이 나의 책이고 그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시댁 어른들 중엔 그런 것들로 남편이 나에게 무시를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옛말에 여자가 똑똑하면 남자가 피곤하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남편이 대학교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나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남편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았다. 남편은 나와 딸을 책임지기 위해 학교를 포기한 것이었고 그가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나는 그가 무식하다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혜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마다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외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좋아하는 분야도 책으로 수업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 미술, 심리, 육아, 종교 정도 빼고는 정말 일자무식자이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의학, 과학, 물리, 화학, 수학, 자연,지리, 역사, 체육, 음악 등등 정말 많은 다른 분야에서는 아마도 중고등학생 수준도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은 세상만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다. 그 궁금증을 그때그때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 배우는 편이다. 그러니 사실 일반상식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남편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편이다.


보통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배운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의 정말 방대한 분야 가운데 지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을 나오거나 박사가 되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척척박사라도 되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박사라는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분을 집중적으로 깊게 공부한 분들이지 세상 모든 만물을 다 꽤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박사라는 말에 모든 것이 나보다 낫고 잘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TV에서도 유명한 물리학 박사가 피톤치드를 모른다며 어떻게 박사가 그걸 모르냐며 방송에서 놀리는 것을 보았다. 물리학 박사는 물리학에서만 박사인데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기대와 착각이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것에서 착각과 오해로 사람들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남편도 나를 무시할 수 있는 조건은 너무 많았다. 나는 살림도 남편처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고 아무리 공부를 오래 하고 학위를 따도 나는 경제적으로는 큰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깟 공부하면 뭐하냐? 책 읽으면 뭐해? 돈도 못 벌면서 혹은 이런 것도 못하면서"라고 얼마든지 깔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도 십수 년 동안 내 공부 뒷바라지를 하면서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뿌듯하다고 했다. 그런 그이기에 나 또한 그가 하는 것을 존중할 수 있었다.


부부 사이에서 무시와 판단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너무 가까운 사이이기에 남들이 모르는 상대방의 약점과 허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비참하게 만들고 내발 앞에 꿇려서 행복해질 부부관계는 없다. 부부는 사실 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자가 마음이 아프고 병들면 언제 가는 나도 병들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우자를 세워주고 아껴주는 것은 내가 약자가 되거나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워주고 아껴주는 것과 같다는 우리는 진작에 깨달았기에 서로를 깔보거나 무시하는 언행이나 행동은 무척 조심했다. 그것이 서로의 신뢰를 쌓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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