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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캠핑카여행은 가능할 것 같아”

by 원정미

화요일 오전 9시반, 남들은 직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남편과 나, 두 아이는 풀어놓은 살림살이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꺼내놓았던 그릇과 냄비는 찬장으로 옮기고 양념통 카트는 단단하게 묶어놓는다. 각자 자신의 침대를 잘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이 없는지 확인한다. 오늘은 애리조나 캠핑장으로 넘어가야 하는 날이다. 거의 5시간을 달려야 하기에 마음이 분주하다. 우리 가족은 지금 RV(Recreational Vehicle), 캠핑카를 타고 미국여행을 하고 있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2년 정도를 계획하고 있다.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면 생업을 모두 멈추고 사춘기 아이들을 데리고 2년씩이나 여행을 할까?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무척 억울하다. 나는 ‘이번에 여행도 하면서 쉬려고요.'라는 말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행하면서 어떻게 쉬어? 집에 있어야지 쉬는 거지.'라고 믿는 사람이다. 아무리 멋있고 환상적인 곳이라 해도 '요즘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드론으로 찍어서 TV에서 훨씬 더 잘 보여줘.'라고 당당히 말하던 사람이다. 코로나 시절의 격리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MBTI로 말하면 대문자 I의 극 내향형이자 집순이인 내가 어쩌다 이렇게 길 위에서 살게 되었을까?


사람은 자고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어릴 땐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커서는 함께 사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 남편이 정작 내 인생을 이렇게 뒤집어놓는 사람이 될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원래 부부는 반대로 끌린다 했던가. 태생이 집순이인 내가 밖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같은 남편을 만났다. 반대도 이런 심한 반대를 만날 줄 몰랐다.


남편은 20년 넘는 결혼생활 내내 ’ 세계여행‘을 외쳤다. 호기심이 많고 도전적인 남편은 낯선 세상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나는 가뿐히 그의 말을 무시했다. ‘나보고 사서 그 고생을 하라고? 노땡큐입니다.‘라며. 어릴 때부터 나는 한 고집으로 유명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선 주장이 없을 정도로 무던한 아이였지만 갑자기 무엇에 꽂혀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절대 꺾이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경상도말로 고래심줄, 쇠심줄 같다고 하셨다. 때문에 남편의 세계여행타령은 나에게 아무 타격도 되지 않았다. 남편은 절대로 나의 고집을 꺽지 못할 테니까.


결혼 후 나의 삶은 늘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오늘은 할머니가 괜히 심통을 부리지는 않으실까? 오늘은 엄마아빠가 싸우시지는 않을까? 이 싸움은 언제까지 갈까?' 어린시절은 늘 예측불가였고 매일이 불안했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내가 그토록 찾던 안정감을 느꼈다. 내 인생 이대로만 살아도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인생엔 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나는 법이다. 5년 전 코로나가 나에게 그랬다. 코로나로 하루 사망자 기록이 날마다 수십 명에서 몇백 명이 늘어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이 나의 삶까지 침투해 왔다. 코로나 격리 중이던 어느 날 20년 지인이었던 언니와 20년 지기 동생의 남편이 2주 간격으로 부고를 전해왔다. 그저께 교회에서 만나 인사하고 허그를 나누던 언니가 자살로 하루 만에 사라졌다. 정확히 2주 후 평소에 지병하나 없이 건강하던 오빠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그림자가 마치 내 코앞 가까이 온듯했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과 죽음'은 마치 '네가 믿고 있던 안정된 삶이란 건 없는 거야' '너에게도 죽음은 언제든 닥칠 수 있어.'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이제 너는 이제 어떻게 살래?'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 질문에도 여전히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였다. 비록 내가 코로나도 죽음도 피할 능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었다. 그럼 나는 죽음 앞에서 무엇을 후회할까?를 생각했다. 내 인생을 바라보며 한스럽거나 후회되는 것은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인생은 아니어도 내가 바라고 원한 것은 다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건 순전히 남편 덕분이었다.


친했던 언니와 아끼는 동생남편의 장례식을 연달아 참석하면서 남편과 나의 장례식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었다. 언니와 오빠가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수 있다면 나와 남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남편도 이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그의 장례식에서 무엇을 가장 슬퍼하고 후회할까 싶었다. 그때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한번 같이 가줄걸’하며 땅을 치고 후회할 내 모습이 단박에 그려졌다.


'내 인생에 세계여행이란 건 없어'라고 자부하던 나의 고집을 스스로 꺾었다. 나는 그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에 해외여행은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하더라도 내 별난 위장이 새로운 나라의 식재료와 향신료를 잘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밥도 못 먹고 비쩍 말라가는 와이프와 여행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세계여행은 미안하게도 어쩔 수 없이 선택지에서 탈락이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해하던 미국인들이 여기저기서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고 그 덕분에 캠핑카매출을 200%나 뛰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뉴스를 보고눈이 번쩍 떠졌다. ‘이거구나!’ 세계여행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미국에서 캠핑카를 타고 미국전역을 돌아다닌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어도 통하고 다른 나라보다는 문화도 익숙한 편이고 집을 달고 가는 것이니 집순이인 나에게도 제격처럼 보였다.


격리기간 중 여느 때와 같이 남편과 산책을 하는 중 남편은 이럴 때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또 투덜거렸다. 그런 그에게 "세계여행은 못해도 미국 내 캠핑카여행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다. 눈이 동그래진 남편은 너무 환한 얼굴로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진짜? 진짜지?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라고 여러 번 확인한 후 그 두터운 손을 내밀며 그 약속 꼭 지켜야 한다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그때가 2020년이다.


2025년 7월부터 캠핑카에서 살며 미국여행을 하고 있다. 5년 전 모두들 불가능하다 혹은 무모하다 말했지만 어쨌든 일은 이루어졌다. 오매불망 꿈을 이룬 남편은 이제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좀 달랐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풀어볼까 한다. 여행을 오래 준비하면서 상상했던 여행자의 삶과 현실에서의 차이를 아직은 극복 중이다. 아직은 여행자로서의 삶이 정착되지 않아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모든 에피소드를 이 브런치 북에 나누려고 한다.


단순히 캠핑카 여행 이야기나 정보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여행 정보는 이미 AI가 더 잘 알려줄 테니까. 여행을 통해 내가 느낀 바는 진짜 여행은 나를 찾게 해주는 것이었고 용기를 가지도록 도와주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브런치북이 나처럼 해보지 않던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사람들이나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렵고 힘든 길은 사실 성장과 성숙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https://youtube.com/shorts/HxrEtSwha0c?si=SSofYGretgS4EhjH

지금 살고 있는 캠핑카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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