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아주 핫하다. 인기만큼 흥미로운 소재와 화려한 연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발연기 따위도 없다. 개인적으론 인간의 본성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너무 흥미웠다. 모르기 몰라도 인간과 심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다. 어떤 공동체이든 사회이든 인간들이 모인 곳엔 분쟁, 속임수, 당파, 차별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협조하고 힘을 합치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 흥미롭게 그려져서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부터는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내게 이 드라마는 "너는 확실한 믿음의 증거인, 숫자와 돈을 믿을래? 아니면 사람을 믿을래?"라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할아버지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단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거대한 돈을 가지고 게임판을 만들어 사람들이 얼마나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지 증명하고픈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나 세상적으로는 실패자이고 무능력한 인간이었던 사람, 이정재는 끝까지 사람을 믿고자 했다. 그의 따뜻한 인간성 덕분에 운 좋게 살아남은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책임져 달라고 부탁할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아버지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분이시다. 함께 사는 어머니도 당신이 낳은 우리도 늘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당신보다 외모가 출중하시고 성품이 얌전하셨던 어머니에게 혹여 외간 남자가 생긴 건 아닌지? 내 재산을 누구에게 빼돌리는 건 아닌지? 평생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셨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직업을 하나도 선택하지 않은 자녀인 우리들은 아버지에 빌붙어 빌어먹는 자식이 될까 봐 늘 의심하고 경계하셨다. 이런 아버지의 신임을 얻고자 발버둥 친 어머니, 오빠와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실망만 커져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 안에 신뢰와 안정이 없는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방법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40년 넘게 사업을 그렇게 오래 하시고 그렇게 많은 취미생활을 하셔도 그 세월 동안 마음을 나눌 친구 한 명 만드시지 못하셨다. 아버지에게 사업과 취미생활은 인간대 인간으로의 소통과 교류의 장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인가를 자랑하고픈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자전거를 잘 타는지 그림을 잘 그리는지 칭찬받고 싶은 아이처럼. 그렇게 소통과 믿음이 없는 사이에 발전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지금 아버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능력을 찬사해 주면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뿐이다. 아버지가 돈도 능력도 사라진다면 과연 곁에 있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가족들도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버지와 지낸다. 오랜 세월 그렇게 받아온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혼자되셨다. 드라마 속 그 할아버지처럼.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도 사람에 대한 불신이 병이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세상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앙을 통해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병을 고쳐나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70세가 넘으신 아버지가 이제 와서 불신의 병을 고치실 수 있으실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버지의 마지막이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나의 이 예상이 제발 빗나가길 바래보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