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요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하고 또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미국에서 누군가는 딸이 일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집에서 차로 한 10-1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일하는 딸이 어제 유난히 꾸물거리는 거였다. 마음 같아선 " 너 이렇게 가면 늦어!"라고 호통치고 싶었지만, 내가 하는 알바도 아니고, 이제 만 18세 성인이 된 아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에 잠잠코 있었다. 그리고 딱 십 분 전 데려다 달라고 말하는 딸을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미적거리다 나온 딸은 이제 십 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과, 엄마가 지각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는 대뜸 " 아빠가 운전하면 십 분 안에 도착하는데 엄마가 운전하면 항상 늦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헉!
안 그래도 꾸물거린 딸아이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이 지각하는 것이 운전을 느리게 하는 내 탓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딸아이에게 내 머리의 뚜껑이 기어이 열리고 말았다. " 야! 엄마가 한두 번 데려다 주니? 아빠보다 엄마가 운전을 천천히 하는 걸 알면 네가 더 일찍 준비해야 할거 아냐! 어디서 지금 엄마 탓을 하고 있어!"라고 버럭 했다. 나의 버럭에 기가 죽은 딸을 " 아.. 알았어 다음부터는 일찍 할게요" 하고는 도착할 때까지 한 8-9분 동안 우리 둘 사이엔 차갑고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큰 아이를 데려다 주고도 " 내가 지각하는 것은 엄마 탓이야"라고 말한 그 말이 트리거(Trigger)가 되어 잠잠했던 내 마음이 온통 뒤집혀 버렸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도착하는 십 분내 내 아이를 쥐 잡듯이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말을 그 딴 식으로 하냐! 이딴 식으로 지각할 거면 알바 관둬! 엄마가 너 운전해 주는 건 하나도 고마워하지도 않고 일부러 고생하는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이냐~ " 어쩌고 저쩌고 하며 큰 아이를 엄청 나쁜 아이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알았다. 갑자기 내 안에서 분노가 폭발한 것은 딸의 잘못이라기 보단 내 안의 상처를 큰애가 건드려서 터졌다는 것을. 그래서 오히려 그 분노를 아이에게 토해내지 않으려 참느라 운전하고 가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에 에 짐이 되고 폐가 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사랑 없는 결혼생활과 냉혹한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엄마의 족쇄이자 짐이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아버자랑 할머니랑은 정말 못살겠다. 죽고 싶다"말을 달고 사신 어머니께서 " 너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 너네 엄마 없는 자식 만들기 싫어서.." 그 소리를 참 많이 하셨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행과 고통에 저와 오빠의 지분이 너무 커 보였다. 우리만 없어도 엄마는 훨훨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엄마를 놓아주지도 못했다. 나도 엄마가 너무 필요했으니까.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고 괴롭고 아프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를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늘 내 가슴 한구석엔 엄마의 짐이자 족쇄인 것 같은 존재적 아픔이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당연히 그 누군가에게 짐이 되거나 폐가 되는 행동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짐이자 폐가 되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으며, 그런 인간관계도 잘 맺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그런 덕분에 책임감 있고 똑 부러지고 성실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 너 때문에 망쳤어,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라는 소리를 혹시 남편이나 가족들이 하게 되면 " 왜 그게 내 탓이냐?"며 길길이 싸우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 말을 어제 같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딸에게 들으니 기가 막혔다. 물론 딸아이는 아마 " 아빠가 운전했으면 지금 가도 안 늦어"라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 놓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알바를 하던 딸이 나를 생각해 문자까지 보내 미안하다며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녔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감정적 흙탕물에 있는 내가 참 싫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감정적으로 분하고 억울한 내 감정이 가라앉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내가 너무 답답했다. 마치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안 넘치게 잘 잡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불안하고 뜨거우니까.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감정 정리가 되지 않았고 남편과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남편이 눈치를 채고 말았다. 아니 남편이 먼저 알아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 무슨 일 있었어? 당신 기분 안 좋아?" 물어보는 통에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제 마음도 같이 털어놓았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싫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짐이고 폐가 되고 싶지 않다." 울며 고백했다. 물론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 그때 어머니가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말도 아니고 당신도 너무 살기 힘들어 한 고백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여전히 그런 뉘앙스가 말들은 어린 시절 내 존재적 무가치를 깨우는 것 같아 많이 아프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그럴 수 있다며 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곤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 너 때문이야~"라고 했다. " 너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도,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것도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너 같이 훌륭한 여자 만나서 이만큼 사는 거야. 다 네 덕분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이제 "너 때문이야 말을 니 덕분이야 라고 들으라"라고 했다. 그 말에 또 남편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아마도 이젠 " 너 때문이야"라는 말에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은 어느샌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더 상담가 같고 치료사 같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나 덕분인지,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서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나처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어떤 말이나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그때 그런 말이나 상황을 만든 상대에게 비난과 화를 쏟아내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마주하기 싫은 상처와 아픔이 건드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만 제대로 인지하고 잘 대처할 수 있어도 우리의 내면이나 인간관계는 한결 평안해진다. 그것이 자신과 잘 지내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