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각각 다른 기억으로 남을 때가 참 많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일로 남아 있는 일이, 또 다른 이에게 잊지 못한 상처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경우가 종종있다. 그건 각각 사건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성격과 그때의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 마다 관점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선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게 너무 중요하거나 아팠던 사건을 상대는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하거나, 더 나아가 아예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억이 절대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까운 인간관계에선 이런일로 다투고 멀어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남편과 나에게도 그런 사건이 하나 있다. 나에겐 그저 우리 둘 사이에 소소하게 다툰 수많은 사건 중에 한 사건이지만 남편에겐 손에 꼽히는 충격적인 "칼국수" 사건이 있다.
사건은 거의 18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무슨 일로 싸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일로 신혼초에 남편과 다투고 달랑 거실과 방하나 딸린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는, 한 사람은 거실을 다른 사람은 방을 차지하고 냉전을 벌이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더 심해지는 남편이기에 화해의 의미로 점심때 칼국수를 끓여 같이 먹자고 먼저 말했다. 사실 나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을 달래려는 의미로 그가 좋아하는 국수를 해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싫다며 먹지 않겠다고 하고 나오지 않았다. 내 호의를 단칼에 거부한 것에 더 화가 난 나는 칼국수 육수 한 냄비를 그대로 싱크에 버렸다. 그리고 그 뜨거운 국수는 쓰레기 통에 버렸다. 원래 나는 화가 나면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먹을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10-15분쯤 지나 배가 너무 고파진 남편이 칼국수를 먹기 위해 부엌에 들어왔다가, 쓰레기 통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는 칼국수 면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 했다. “ 이 여자 정말 무서운 여자구나…” 하며.
당연히 우리는 곧 화해를 했지만 이후로 남편은 가끔 어떻게 먹지도 않은 칼국수 한 냄비를 버릴 수 있냐며 따지곤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제가 차려준 밥을 잘 먹는다. 내가 또 혹시 다 버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나에겐 너무 대수롭지 않은 그 일을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그가 더 이상했다. 나는 남편을 위해 끓였는데 안 먹으니 당연히 버릴수 밖에 없는 것이였다. 국수는 오래두면 퍼지니까.그러나 남편과 오래 살다 보니 당연히 그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다. 먹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잘 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금방 한 칼국수 한 냄비가 쓰레기 통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각각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모든 사건은 다르게 기억된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어떤 아이는 사랑받았다고 느끼고 어떤 아이들은 힘들고 아팠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누군가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 각 사람의 기억의 오류를 인정하고 받아줘야 하지 않나 싶다. “ 그래.. 너는 그렇게 기억하는구나.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였는데, 너는 그렇게 느꼈구나”하며.
그리고 어떤 경우엔 상대에게 아픔으로 기억되는 것이 있다면 오해를 풀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에게 별일 아닌 일이 상대에게 대못으로 남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기억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상대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이에선 말이다. 때로 인생에선 사건의 진실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