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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 놈만 패!

내가 요리를 잘하게 된 이유

by 원정미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입맛이 유달이 좋은 사람이 있고 늘 입맛이 없는 사람도 있다. 정말 배가 찢어질 만큼 먹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정말 저렇게 먹어서 어떻게 살아? 정도로 먹는 사람도 있다. 이것저것 모든 음식을 눈으로 입으로 맛보길 원하는 사람이 있고,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는 사람이 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단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맞추어 내는 대장금 같은 미각을 가진 사람이 있고 상한 것만 아니면 먹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러나 크게 분류하자면 살려고 먹는 사람이 있고 먹으려고 사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나름 미식가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귀신같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낸다고.. 내가 먹는 것만 먹으면 실패할 일 없다고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동네에서 요리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집밥 덕분에 나름 고급진 입맛을 가지고 있다. 옛말에도 잘 먹은 사람들이 요리도 잘한다고 했던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을 하고 미국으로 정착한 이후에 내 요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재현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혔다. 마치 내 미각은 추억을 찾아 헤매는 듯이 엄마와 할머니의 요리를 닮아갔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시골 어른 손맛을 낼 줄 안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내 요리실력의 주요 공로자는 사실 남편이다. 나도 미식이라면 어디 가면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결혼하고 더 큰 강적을 만났다. 남편은 먹으려고 사는 사람 쪽에 속한다. 먹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고 관심사이다. 거기다 남편은 모든 감각 중에 미각이 특별히 예민했다.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떤 식으로 요리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어지는지 기가 막히게 아는 사람이다. 신혼초에는 그의 간을 맞추지 못해 늘 밥상머리에서 잔소리 듣기가 일수였다. "이건 짜고 이건 싱겁고 이건 너무 익혔고 이건 너무 덜 익었고..."그 소리를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여러 번 들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그가 먹던 밥그릇을 뺏어버리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또 어떤 날은 " 우와 이건 너무 맛있어, 나 이런 거 처음 먹어봐, 이걸로 장사해도 되겠다. 와 대박~"라는 찬사에 넘치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자신의 입맛에 맛는 음식은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쓸이 해주는 덕분에, 그 재미에 나 또한 요리를 멈출 수 없었다. 남편은 정말 당근과 책찍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대부분 그가 맛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 대접해도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럽게 한 놈(?)에게만 맞추어져 갔다.


누군가는 결혼하면 음식은 시어머니께 배운다고들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요리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도 신랄한 독설은 날아갔다. 어머니도 아무거나 불평없이 잘 잡수시는 시아버님과는 다른 가까로운 아들을 맞추시진 못하셨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도 요리의 마지막 간은 늘 남편의 몫이었고 남편이 결정을 내려주었다. "좀 짜다. 싱겁다. 더 맵게 해라. 괜찮은 것 같다" 등등.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 때에도 손님이 와도 정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요리는 늘 "그 한 놈", 남편에게 맞추었다. 그래야 모두 평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편과 2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밥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젠 남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맛을 자연스럽게 만들수 있다.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는 누구에게 대접해도 손색이 없는 음식들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길들여져 왔고 덕분에 이 지경 아니 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음식도 모두에게 맞출 필요 없었다. 어쩌면 요리도 인생도 가장 독한 놈, 한놈만 패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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