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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Oct 30. 2023

그분의 포도밭


추석을 앞두고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시숙님이 다시 쓰러지셨다는 연락이었다. 서둘러 밤차로 대구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친척들이 다 모였다. 그분의 의식이 오락가락 불안정해서 가족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오랜 투병 중이셨지만 표정만은 편안해 보였다. 일흔이 되신 시부모님을 뵈러 가듯이 아련했던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8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날이었다. 텃밭에는 보라색 포도가 탱글탱글 익어갔다. 새댁 시절 하얀 앞치마에 자주색 물감이 얼룩얼룩 덧칠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들 몰래 포도밭으로 들어갔다. 어른 손바닥만 잎사귀 사이에 매달려 있는 포도를 걸신들린 사람처럼 따 먹었다. 순진하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밭주인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갓 시집온 제수가 포도밭에 들락거리는 것을 모르는 척해 주었다. 시집살이로 힘들었던 시절을 견디게 해준 달콤한 포도였다.

처음에는 왠지 궁금했다. 비쩍 마른 몸과 비릿한 냄새와 숯덩이 같은 몸 때문이었다. 그분이 월남파병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하루 이틀 지나자 골골거리며 밭은기침을 자주 하셨다. 나도 홍역 기침에 시달리던 때라 공감이 되었다. 가족들은 병명도 모르고 전쟁에서 얻은 병이려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동생들보다 몇 기수 늦게 입대 길에 올랐다. 장병들과 훈련을 받고 해병의장대로 차출되었다. 밀림 속에서는 베트콩들만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노리는 뱀과 해충들도 우글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게릴라전에 부대는 폭격을 당하였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상황이었다. 막바지에 베트콩 소탕 작전이 펼쳐졌다.

정글의 장병들은 목이 말랐다. 때마침 하늘에서 축복 같은 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제초제를 탄 물을 미군들이 정글을 불태우기 위해 비행기로 뿌렸다. 구사일생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분은 고엽제 후유증을 앓았다. 시름시름하며 소일로 밭에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가을에 포도 묘목을 전지해서 모래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눈이 트이면 밭에 옮겨 심었다. 아치형 넝쿨식물 지지대를 세우고 철사로 묶었다. 무성한 가지들은 원가지의 수액을 빨아들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포도 알은 달게 익어갔다.

눈만 뜨면 그분은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아롱다롱한 철부지 동생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넷째 동생인 내 남편은 진득하지 못해 늘 사업을 벌여 놓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아 마음을 잡지 못했다. 동네 청년들과 술을 마시고 패싸움을 벌였다. 하루가 멀다고 경찰서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맏형의 양어깨가 중압감에 짓눌렸다. 혹시라도 동생이 전과자가 되면 훗날, 조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서장님이 보호자를 부르는 전화가 오면 그분은 열일을 제쳐놓고 총알처럼 달려갔다. 두 무릎을 꿇고 “동생을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빌고 또 빌어 새벽이 되어서야 터덜터덜 두 사람이 손잡고 돌아왔다. 돌아보니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시숙이 도와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고향 집을 뒤로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분은 한 달 후에 뒤쫓아 올라왔다. 포도나무 줄기가 울타리 밖으로 멀리멀리 뻗어가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을까. 어린조카들이 눈에 밟히는 포도나무 묘목이었다. 객지에서 옆길로 뻗지 말라고 용기를 주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내 남편은 귓전으로 흘리며 한눈팔고 엇나갔다. 그럴수록 그분은 동생에게 자상하게 훈육을 하셨다. 달동네 문간방을 전세로 얻어 놓은 집을 둘러보았다. 객지에서 아프거나 돈이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를 놓았다.

내색을 하지 않아도 훤하게 들여다보았다. 가끔 전화로 나에게, 동생의 건강이 회복되면 성실하게 회사에 잘 다닐 것이라고 다독였다. 그 덕분인지 남편은 마음을 잡아갔다. 달동네 오두막집을 사고, 먼저 시숙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집 장만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름이 사라졌다며 반가워하였다. 그분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명절, 휴가철에 찾아뵈면 살벌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합군이 종전을 알릴 즈음,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회식 자리가 열렸다. 포도나무 줄기 같은 동생들을 돌보며 살았기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분이었다. 지뢰밭에서 회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혼자 군 막사를 지켰다. 연회장에 몰려갔던 장병들은 모두 술에 곯아 떨어져 있었다. 정보를 입수한 베트콩들이 자살폭탄을 터트렸다. 아비규환을 목격한 생존자가 되었고 눈만 감으면 늘 환영에 시달렸다. 아직도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분은 어느 정글 속을 헤매고 있다. 거친 호흡을 내뱉고 헛소리도 중얼거리며 허공을 향해 손짓을 했다.

온몸에는 포도송이가 열렸다. 수분과 영양공급을 위해 흰색,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 링거 병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렸다. 의사가 회진을 돌았다.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눈에 작은 전등을 비추었다. 양미간을 찡그리고 보호자를 불렀다. 오늘 중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차트에 사인을 휘갈겼다. 가족들의 실낱같은 희망도 무너졌다. 그분은 먼저 간 전우들에게 돌아가려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싸늘한 손목에서 실낱같은 맥박이 뛰었다. 고독하게 투병하는 동안 그 많은 형제는 무엇을 하며 어디에 있었을까. 진액을 소진한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고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쳤다. 그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던 날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내 인생의 포도밭에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세상이 주는 눈, 비를 맞기도, 흙탕길에 넘어지기도 하며 뒹굴었다. 숨이 턱턱 막혀 힘겹게 벼랑을 오르내리며 자식들을 키우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평소 그분을 찾아뵙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많았다.


맏이라는 책임감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멍에처럼 옥죄었다. 한시름 놓는다 싶었는데, 조카들이 울타리 밖으로 엇나갔다. 사업을 한답시고 빚을 키워 기둥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시숙님은 동생들이 떠나버린 빈 둥지를 지키며 허허로운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며 살았을까.


기억의 언저리에는 시린 날들이 되살아났다. 철없는 남편은 꼭 시숙님의 새 양복을 몰래 훔쳐 입고 줄행랑을 쳤다. 출근할 때면 들통이 났다. “누가 내 옷을 입고 나갔냐?” 가족들의 눈이란 눈은 모두 내게로 쏠렸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면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새 옷과 새 구두만 선호하는 남편이 얄미웠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런 시절도 행복했던 날로 채색되어 풋풋한 웃음을 삼키곤 한다.


병실 문이 열렸다. 수간호사가 들어왔다. 머리맡에는 그분께서 물과 거름을 주고 가꾸어 놓은 포도송이들이 둘러앉았다. 평생 무겁게 내리누르던 멍에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깡마른 겨울나무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백의의 천사가 두 손으로 호스 줄을 잡고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었다. 온 가족이 임종 기도와 포도나무 성가를 부르며 그분을 보내드렸다. 이제 우리가 포도밭을 물려받았다. 그분이 살아 냈던 것처럼 땀 흘려 가꾼다면 다음 세대에도 보랏빛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그러하리라….” 〈요한 15장 1절~10절〉

포도밭은 그분이 삶의 애환을 달래던 곳이었다. 흙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을 마주하고 시름시름하였다. 척박한 땅에 던져진 동생들이 도회지에서 뿌리를 잘 내리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육신은 힘들었는지 몰라도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분은 칠십에 돌아가셨다.


지금 내 나이가 칠십이다. 나는 포도밭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밭고랑 사이사이마다 그분이 견뎌냈을 시간들이 발아래 펼쳐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나를 비워내는 소중한 공간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 줄기를 뻗어 나갈 수 있는 그들의 포도밭이 되어 주리라. 저기 높은 곳에서 평온하게 지낼 그분을 불러본다.

“시숙님, 이제 제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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