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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Maf Jan 17. 2024

나는 관조를 시도한다.

회피가 정답은 아니다.


회피가 정답은 아니다.


내가 유튜브 일곱 번째 커피영상에서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 때 회피하는 만트라를 소개했다.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이 생각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이건 모든 감정이나 생각을 무작정 보류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공부를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감정을 관조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


물론 모든 감정이 직면할 수 있거나 모든 감정이 관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면하거나 관조하기 힘든 수준의 감정들은 위에 만트라를 사용해서 그 감정을 발생시키는 생각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방법으로 회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욕구와 관련된 생각들은 직면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된다.


술, 담배, 마약, 음식,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 욕구는 대부분 증폭이 된다.


이건 잠영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욕구에 집중하면 그 욕구는 대부분 커진다.


나는 수영장에 가면 주로 잠영을 한다. 물론 물속 잠영은 다른 사람과 충돌 우려가 있어서 떠 있는 상태로 잠영 영법으로 25미터를 숨 안 쉬고 왔다 갔다를 계속 반복한다.


이때 내가 깨달은 바가 있다.


명상을 오래 하다 보니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는데 너무나도 특화가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숨을 참고 나서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그대로 느꼈다.


그런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달은 것은 호흡 충동이라는 컨트랙션(Contraction)이 훨씬 빨리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건 술을 끊고자 하는 사람이 의지를 다지겠다고 눈앞에 술을 따라놓고 계속 쳐다보는 것과 같다. 그냥 마시라는 이야기다.


굳이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야식을 시켜놓고 가만히 쳐다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호흡충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바닥 타일에 줄눈 하나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는 거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줄눈만 쳐다보고 잠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25미터에 도달하게 되더라.


그런데 신기한 것이 줄눈에 집중해서 가더라도 배수구가 보이면 지금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알 수가 있는데 호흡충동이 전혀 없이 가다가도 마지막 배수가 보이면 숨이 차오른다.


"내가 이 정도로 숨을 안 쉬었으니 이제 숨을 쉬어야겠다"


라는 욕구가 올라오는 것이다.


즉 25m 라인이 아니라 배수구가 없는 100미터 라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줄눈만 보고 잠영을 하면 충분히 더 길게 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이 숨을 참고 죽을 수 없다.


현재까지 숨 참기 기네스 기록은  크로아티아의 프리다이버 부디미르 부다 쇼바트의 24분 33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인간이 24분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그리고 호흡충동이라는 것은 산소가 부족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량이 과다해서 몸에서 호흡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라는 신호다.


산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호흡충동을 참는다고 해서 죽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 중에서는 죽을 정도가 되면 기절을 시켜 알아서 숨을 쉬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24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다.

호흡충동은 산소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절대 공기 중에서 숨을 참고 죽을 수 없다.


이 세 가지를 깨닫고 나서 나에게 경이로운 일이 발생했다.


살면서 한 번도 2분 이상 숨을 참아본 적 없는 내가 첫 번째 측정에서 2분 20초를 참았다.


그 후 하루 정도 Co2 테이블이라는 프리다이빙 훈련을 거친 후 첫 번째 측정 기록이 3분 30초였다.


물론 내가 호흡 명상을 오래 한 상태라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숨 참기 기록이 달라진다.


감정을 관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수준의 감정은 충분히 관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관조를 쉽게 만든다.








나는 관조를 시도한다.


"이 생각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나는 이렇게 판단을 보류하고 나서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서서히 관조를 시도한다.


상황에 대한 관조를 여러 번 시도하다 보니 어느 정도 느낌이면 관조가 가능할 것 같다는 감이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상황을 다시 관조한다.


관조는 그냥 요정도 느낌이다.


“아.. 내가 두려워하고 있구나..”


“아.. 내가 이 상황을 싫어하는구나.. “


“아.. 내가 이 상황을 좋아하는구나..”


"아.. 내가 자랑을 하고 싶구나.."


현재 자신의 상태를 좋다 나쁘다는 분별없이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판단을 보류한 후에 굳이 관조를 다시 시도하는 이유는 이걸 자주 시도해야 관조가 가능한 상황에서 그냥 관조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정은 관조하기 시작하면 분별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그 감정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관조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관조를 시도하다가 감정에 다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감정의 처리는 정답이 없다. 자신에게 맞는 답만 존재할 뿐이다.


감정을 관조해야 한다는 그 자체도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의 분별일 수 있다. 그냥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는 게 맞다.


회피든 직면이든 관조든 특정 상황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정답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반야바라밀” “나는 신의 한 조각이다.”


등 자신에게 맞는 감정을 처리하는 만트라를 찾는 게 중요하다. 나에게 맞는 것이 남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단지 나에게 맞는 만트라는 이것일 뿐이다.


“이 상항은 대수롭지 않다. “

”판단을 내일까지 보류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만트라로 감정을 관조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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