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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Maf Aug 28. 2023

몸은 내가 아니어야 한다.

고대인들은 왜 모두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위대한 발명품


2023년 뇌과학이 획기적으로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손으로 조정하던 많은 것들을 뇌파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뇌에서 생각을 보내면 자유자재로 물건을 집을 수가 있는 장치가 개발되면서, 그 장치들은 팔이 잘린 사람의 팔을 대신하고, 숨 쉬기 힘든 사람의 심장이 되었다.


 2035년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이 장치들이 뇌의 감각기관과 싱크 되면서, 이 장치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온전히 우리의 뇌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십여 년이 더 흘러 이 장치의 오감을 고스란히 본체에 전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2050년을 사는 부자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서 대신 일하고, 춤추고,  여행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클론을 통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생각만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모든 오감을 뇌로 전달할 수 있는 장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이다.



우리의 몸을 자신의 본질과 분리시키는 순간, 2050년에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경험을 지금 당장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 몸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몸은 내가 아니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도대체 왜 다 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이건 우파니샤드에서 고대 현자들이 우주의 본질을 “아니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neti(네티)”를 두 번이나 써서 “neti neti”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다



이것도 아니고(neti), 저것도 아니다(neti)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참 자아 아트만은 모든 것을 경험하는 주체이지만, 몸도 감정도 생각도 아닌 그 무언가다.


근데 이걸 본질적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사상의 진위를 떠나서, 이 생각에 도달하면 정말 이상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몸, 감정, 생각이 본질적인 내가 아니라고 자각하는 순간, 나는 모든 감각을 경험하는 주체이지만 외부 타격은 전혀 받지 않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한마디로 자기와 완전히 동일한 분신을 속된 말로 바지 사장처럼 현상계에 세워놓고, 실체는 뒤로 빠지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 분신이 하는 모든 감각적인 경험은 본질인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타인이 주는 타격은 분신이 받는다.


타격을 받는 것은 내가 아닌 것이다.



이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나에게 참 자아 아트만의 진위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아트만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지금 나에게 내 몸이 본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와 내 몸을 분리시키는 순간 나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내 몸은 내 아이폰과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왜 모든 마음공부하는 사람들과 우파니샤드에서 몸이 내가 아니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인식이 되는 내 몸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려니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내 몸은 분명히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데, 이것을 내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수십 년간 명상을 지속해도 나에게 내 몸은 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지금의 나에게 내 몸은 아직도 내 소유지만, 더 이상 내 본질은 아니다.


우파니샤드의 현인들이 깨달았던 방식과 지금 내가 깨달은 방식이 같은지 다른지 나는 모른다. 솔직히 지금은 크게 관심이 없다.


나는 우파니샤드를 한 번 필사하고 수십 번을 읽었고,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있지만, 굳이 내가 고대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에게 맞는 사고방식은 내 몸을 나의 본질과 분리시키고, 내 몸을 그냥 내가 쓸 수 있는 도구로 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내 몸을 내 아이폰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내가 아이폰을 들고 있을 때, 미시계인 원자 단위로 들어가면 아이폰과 나의 몸은 정말 그 어떤 차이가 없다. 둘 다 파동함수가 붕괴된 입자에 불과하다.      


태양이 붉은색 점처럼 보일 정도로 거시계로 나가면, 아이폰과 내 몸은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에 존재하는 티끌보다 작은 물질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현재 내가 지각하고 있는 현상계에서만 내 몸과 내 아이폰이 구분될 뿐, 완전히 미시계나 거시계로 가는 순간 둘 다 동일한 입자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고하는 순간

내 몸은 내 아이폰과 같아진다.








내 몸은 과연 아이폰보다 소중한가?


자신의 몸을 물건으로 생각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는 자신의 몸을 물건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아이폰을 소주에 담그면 미친놈 취급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소주에 담그고, 아이폰 스피커에 연기를 불어넣으면 기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몸에 연기를 불어넣는다.  


타인이 자신의 아이폰을 긁고 있으면 난리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장을 긁고 있는 타인들을 가족이나 상사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자신의 휴대폰을 던지고 발로 밟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할 행동은 명확하다.



도대체 왜 남의 폰을 망가뜨리세요?



그런데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그 많은 행동들을 스스로 하면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남이 자신의 몸을 심각하게 망가뜨리는데도 그냥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새로 사면 액정 보호필름을 붙이고, 커버를 씌우고, 떨어뜨릴까 봐 조심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몸은 새로 산 아이폰 만도  못한 것이다.








과연 내 몸의 에너지 효율을 따지는가?


나는 올해 20년 동안 타고 다닌 2004년식 NF소나타를 해외로 보내고, 전기차인 아이오닉을 새로 뽑았다. 출고되기 전부터 아이오닉으로 검색할 수 있는 모든 유튜브 동영상은 다 섭렵을 했고, 전기차 충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기 소모량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공부를 마친 상태였다.


새 차를 받자마자 에너지 효율을 위해 좀 답답해도 에코모드로 바꾸고, 옆 사람이 멀미가 나든 말든 스마트 회생제동을 쓰면서, 출고 시 5.3km/kWh에서 시작한 평균 전비는 지금 8.9km/kWh대까지 올랐다. NF소나타에서 계속 썼던 극세사 브러시는 당연히 흠이 날까 봐 쓰지 않는다.


이렇게 자동차를 새로 사도 기능을 섭렵하고, 에너지 효율을 따지고, 흠이 나지 않게 관리한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블랙박스를 달고, 누가 긁기라도 하면 블랙박스와 주변 CCTV까지 확인하면서 난리를 치는데,


정작 자신의 몸에는 어떤 기능이 있는지, 에너지 효율은 좋은지, 누가 위장을 긁고 있는지는 따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몸은 새로 뽑은 신차만도 못한 것이다.


만약 내가 내 몸을 10억 원을 주고 구매한 슈퍼카처럼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파트에 주차한 본인 소유의 10억짜리 람보르기니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만약 2050년에 생각만 해도 작동이 되고, 모든 오감이 전달되는 자신과 같은 클론이 출시되면, 과연 그 제품을 10억 이하로 살 수 있을까? 이걸 만드는 게 아마 화성에 가는 것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10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른다.


아마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낄 수도 있다.


슈퍼맨이 크립톤 행성에 가면

동네 바보형이 되는 것처럼








내 몸은 내가 보유한 가장 유익한 도구다.


나는 몸을 통해 물질을 인지할 수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책을 볼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지금처럼 글을 쓸 수도 있다.


내 몸은 본질이 아닌 도구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몸을 더 이상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도구로 생각하고 나서 내가 느낀 점은 예전보다 훨씬 더 몸을 아낀다는 것이다.


평소 때 아무 생각 없던 내 몸이 새로 산 아이폰처럼 인식되면서 긴장을 하는 부분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에너지 효율은 좋은지, 무엇이 악영향을 주는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에



명상이라는 보호 필름을 붙이고,

요가라는 커버를 씌웠다.


그래서 현재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시시각각 체크하고 무리가 간다는 판단이 들면 그냥 쉰다. 예전처럼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주기적으로 명상과 요가를 병행하며 몸 상태에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몸을 도구로 자신의 본질과 분리시키고 나서 내가 경험한 현상들이다.


감정과 생각도 몸과 동일하다.


앞으로 내 몸, 감정, 생각 등 내 내면의 것들이 본질과 분리되었을 때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분리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더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더 자석 같은 인생 심화 편을 계속 따라오다 보면 왜 그렇게 고대 인도인들이 그토록 몸, 감정, 생각을 자신과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몸, 감정, 생각을 자신과 분리하는 순간 우리는 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고, 신과 같은 수준으로 삶이 안배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참 자아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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