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이 불가능한 어르신을 위한 공간
이전 1편에서는 현재 요양원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사용자가 느끼기에 좋은 공간이 되려면 그들이 설계에 포함되어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요양원은 어르신들이 주체가 되기보다 불특정 한 대상을 상대로 만들어진 보편적인 공간에 맞춰 구성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공간이 어르신들에게 적절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감옥 같은 공간이 되는 이유 두 가지를 소개했었다. 스스로가 공간을 선택할 자유를 잃을 경우와 공간이 변하지 않는 경우. 나는 후자에 집중해보려 한다.
우선 어르신들의 거동 범위는 공간을 나눌 괜찮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거동의 유무를 가지고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거동이 불가능한 분들과 가능하신 분들이다. 거동의 유무는 그들이 머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나눠준다.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어두어도 그들이 이용할 수 없다면 데드 스페이스, 죽은 공간이다.
침상에 누워 계셔야만 하는 분들의 경우는 안타깝지만 변화를 많이 주기는 어렵다. 한번 우리가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는 핸드폰도, 읽을 책도 없다. 무엇이 우리 머릿속을 채울까? 소리. 내가 생각할 때는 소리가 채우고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발소리,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말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클락션 소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 중 특별히 더 예민한 것이 있다면 청각일 것이다. 현재 요양원에서는 TV 소리가 유일한 다채로움을 불어넣는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빛이다. 눈을 감고 있더라도 우리의 눈은 빛에 반응한다. 실내 등이 계속해서 켜져 있지만 공간의 밝기는 낮과 밤이 굉장히 다르다. 침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볼 수 있는 범위를 더 넓혀드리면 좋겠다.
공간에 들어오는 소리를 통해 하루의 흐름을 알 수 있고, 사람 냄새나는 소리를 통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일반적인 방의 경우 최대한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려 하겠지만 과감하게 방음의 정도를 줄여본다. 해에 따른 빛의 변화를 최대한 느끼고, 좋은 뷰가 있는 환경을 위해 방의 방향과 창을 설정해야 한다.
매트리스를 떠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지만 그 공간을 언제나 함께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요양보호사다. 요양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어르신들이겠지만 둘째로 중요한 사람을 뽑으라면 나는 보호사 선생님들을 뽑을 것이다. 그들은 건물 곳곳을 안 사용하는 곳이 없으며, 하루 종일 이동하며 어르신들을 돌본다. 어쩌면 그들이 진정한 요양원이라는 공간의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움직일 때 어르신들도 움직이신다. 그들이 편할 때 어르신들도 편안함을 느끼신다. 요양원만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상가 건물에 요양원의 프로그램들을 강제로 집어넣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도를 두고 실을 배치하다 보니 실들의 관계가 정돈되어있지 않고 분리되어있다. 어디에는 식당, 저 멀리에 목욕실, 외딴곳에 지원실, 그리고 창고 등. 이는 선생님들의 능률과 효율을 앗아간다.
거동이 불가능한 이들의 공간은 어르신들에게 맞추기보다는 최대한 선생님들의 동선을 배려하면서 그들의 일과에 맞춰 공간을 구성하면 좋겠다.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 또한 더 좋은, 더 나은 케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리처드 의학 연구소를 설계할 때, 주 공간(served space)과 종 공간(servant space)의 개념을 제시했다. 주 공간은 서비스를 받는 공간으로 건물의 주된 목적을 갖는 사용자가 머무는 공간이다. 종 공간은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는 공간이다. 즉 요양원의 공간을 대응해보면 어르신들이 지내는 곳은 주 공간,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종 공간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효율적인 동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주 공간과 종 공간의 거리가 가까우면서 비슷해야 한다. 방사형의 구조를 선택했을 때 종 공간은 모여 있으면서 주 공간을 향해 같은 거리를 갖게 된다. 이 형태가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중앙에서 함께 준비하다가도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살피며 어디든 금방 갈 수 있다. 끊이지 않는 원형의 복도는 요양보호사의 동반자 서빙 카트를 끌고 다니며 방들을 점검하기 좋다. 일과에 따라서 동선을 계획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질 것이다.
원형의 공간과 동선은 선생님들 뿐 아니라 어르신들께도 좋다. 일반 상가의 복도는 일직선으로 되어 한쪽 방향을 향해 가다 보면 끝에 다다른다. 어르신들은 한쪽 방향을 따라서 걷다가 다시 180도 돌아서 왔던 곳을 가며 산책하게 된다. 하지만 원형 복도의 경우 마치 트랙을 도는 것과 같이 산책을 할 수 있게 된다. 복도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동선의 가짓수와 길이가 다양해지며 만나는 풍경도 다양해질 수 있다. 이러한 복도는 따분한 산책이 아닌 즐거운 산책을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어르신이 주인이 되는 요양원 건물이 필요하다. 특별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께는 소리와 빛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드리고, 그들을 보살펴드리는 보호사 선생님의 효율을 늘려줄 수 있는 공간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소리에 노출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밖의 풍경과 빛을 감상할 수 있는 창을 둔다. 또한 원형의 구성 위에서 실들을 배치했을 때 선생님들의 동선이 편해지고 어르신들의 산책이 즐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