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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Oct 30. 2022

건축학과 학생이 보는 요양원(3)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

2편에서는 공간을 많이 영위하지 못하는 분들이 이용할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저번 글의 말미에 소개한 원형 공간의 장점은 실들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동선을 재미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평면과 투시도 예시. 초록 길이 복도이다.

원형으로 된 공간을 교집합이 생기도록 겹쳐보면 왼쪽의 그림처럼 될 것이다. 초록색의 길이 산책 등을 할 수 있는 복도라고 가정했을 때 교집합이 생기는 부분들은 갈림길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한 방향으로의 동선을 강요하는 기존의 직선적인 통로들과 차별점이 생긴다. 오른쪽의 그림처럼 단지 평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수직적인 동선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배치할 때 내가 주목하게 되는 공간은 분홍색의 공간들이다. 여러 개의 원들이 겹치면서 사이에 중정과 같은 공간들이 생기게 되고 이곳을 통해 산책하는 어르신들께 새로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복무요원의 일과 중에 꽤나 중요한 일에 속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었다. 어느 정도 다리의 힘이 있는 어르신을 모시고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 전후로 함께 걸었다. 문제는 요양원의 복도는 너무나도 짧고 걸으며 보이는 것 마저 남의 방들 뿐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걷던 일직선의 길이 아닌 테라스를 한 번씩 함께 나갈 때면 그 작은 차이에도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았다. 자신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곳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갈림길을 만들고, 접점들에서 다채로운 공간들을 느끼면 같은 공간의 크기이지만 더 넓고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원형 복도가 줄 수 있는 산책로


일본의 후지 유치원은 원형 공간을 사용한 선배 중 하나다. 건물의 사용자인 어린이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춰 성공적으로 설계되고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평가받는다. 후지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열리자마자 금방 최고의 유치원이 되었다. 끝이 없이 달릴 수 있는 트랙과 같은 건물의 지붕, 건물을 관통하는 나무와 천창을 통해 만들어지는 색다른 놀이터, 여러 활동을 하기 좋은 중정 공간 등의 요소가 돋보인다. 건축가 테즈카 타카하루는 후지 유치원을 만들며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후지 유치원의 전경 (출처: https://url.kr/frvj98)

타카하루의 생각처럼 나도 마을 공동체와 같은 건물을 상상하며 설계하게 된다. 어르신들이 단순히 남은 삶을 쥐어짜듯 견디고 버티며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양원 안에서의 여생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그린다. 특별히 후지 유치원을 소개한 이유는 노인과 아이는 꽤나 접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지 유치원의 성공적인 설계 포인트를 차용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노인과 아이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와 같은 공간을 꿈꿔보게 된다.

A: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 B: 아이들 / C: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

예를 들어 3층으로 된 공간을 생각해보자. 시야와 채광을 위해 최상층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방을 배치하고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외부로 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최하층에 방을 배치한다. 중간인 2층에 아이들의 공간을 두어 아이들이 어르신들의 공간에 스칠 수 있도록 한다. 

요양원 내에서 변화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감옥 같은 요양원에서 아린 어르신께 작은 탈출구가 되었던 것은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변화하는 자연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지만, 매일마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공간에는 자연스럽게 산뜻한 변화가 곳곳에 피어나지 않을까. 인생의 마지막을 고이 접으며 준비하는 이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지 유치원 1층 (출처: https://url.kr/5uhwir)


고령화 시대는 이미 왔다고 한다.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더 나은 공간들이 준비되어야 하고 대비되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요양원들에 우리 부모님을 모신다고 생각하면, 다른 이유가 아닌 공간 때문에 모시기를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어떤 방향으로든 노인들의 공간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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