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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Jul 18. 2022

메타버스와 어르신

샌 주니페로

※ 본 글은 <블랙미러 시즌3 - 샌 주니페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양원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어르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르신들에게 하루란 무엇일까. 어르신들도 하루를 셀까. 나은 어르신과 이서 어르신과는 일 년이 넘어가도록 이야기를 한번 나눠 볼 기회가 없다. 안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나은 어르신은 알아들으신 건지 아닌 지 알 수 없는 신음 혹은 울음으로 답해주신다.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나를 보고 반응하고 계신다는 것. 눈을 마주치고부터 "에. 에. 에." 음절들의 반복이 빨라진다. 무언가 의미를 담아서 보내시지만 언제나 오배송. 이서 어르신은 소리 대신 눈빛으로 더 강한 시그널을 보내신다. 내 얼굴을 또렷이 응시하시다, 내 말에 맞춰 눈을 깜빡이신다. 두 어르신을 비롯해 침상에만 누워계시는 어르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실까.


요양원의 두 여인

여기에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두 인물이 있다. 사진 속 침상에 누워있는 인물이 요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노란 코트를 걸친 인물이 켈리이다. 요키는 40년 전의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의식만 남아 고개 하나 돌릴 수 없는 처지이고, 켈리 또한 암 환자로 병세가 악화되어 시한부 선언을 받고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둘은 다른 요양원 사람이지만, 만난 지 이틀 만에 결혼을 한다. 켈리는 손을 대어, 요키는 컴퓨터에 연결된 의식을 이용해 결혼 서류에 서명한다.


그 짧은 시간만에 결혼이라는 단계까지 밟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샌 주니페로 안에서 한 주에 한 번씩 몇 달간 꾸준히 만남을 이어왔다. 보호사의 부축이 없이는 이동하기 어려운 켈리와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요키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일까, 샌 주니페로는 가상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가장 젊고 아름다운 때로 돌아간다.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시대로 돌아간다. 1987, 1996, 2002. 원하면 다른 시대도 갈 수 있다. 눈 한번 깜빡임으로 복장을 바꾸고 나갈 채비를 한다. 젊은 날의 음악, 패션, 문화를 공유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나의 마음을 뛰게 하던 것들에 다시금 달려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샌 주니페로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의 치매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기술은, 위험성을 이유로 1주에 5시간만 접속할 수 있다.

샌 주니페로 속 1987년의 켈리와 요키

둘이 결혼한 것은 요키의 안락사를 위해서였다. 죽은 자는 샌 주니페로에 영원히 넘어갈 수 있다. 요키의 안락사를 허락하지 않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기위해 결혼을 통해 켈리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 안락사를 대신 승인한 것이다. 요키에게 침대 위에서의 꼼짝 못 하는 40년은 의미가 없는 삶이었다. 그녀에게 샌 주니페로는 희망이었고 그곳이 현실보다 현실이었다. 그녀가 교통사고로 빼앗겼던 삶이 샌 주니페로에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진짜에요. 나도 진짜고."

"저와 같이 살아요. 이리로 건너오라고요. 10분 있으면 당신은 사라지고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해요. "


켈리의 입장은 달랐다.

"이곳을 거쳐가는 중이에요 떠나기 전에 재미있게 지내려고요."

"영원이라뇨. 영원이 뭔지 누가 알아요?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영원히 살고 싶어요? 길 잃은 사람들 모두 뭐라도 느껴보려고 갖은 애를 쓰려고? 난 됐어요 안 할래요."

켈리는 샌 주니페로를 잠시 즐기다 가는 곳으로 여긴다. 마치 여행을 다니듯, 본인이 원래 있어야 할 곳과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태도다. 켈리에게는 먼저 죽은 남편이, 그리고 딸이 있었다. 그들은 샌 주니페로에 없다. 켈리는 그들을 두고 자신만 이곳에 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샌 주니페로의 민낯

과연 샌 주니페로는 어떤 공간일까? 요키의 말처럼 낙원과 같은 공간일까, 켈리의 말처럼 허상에 불과한 곳일까. 단순히 바라보면 샌 주니페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유토피아와 같은 공간이다. 행복했던 그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다. 요키처럼 더 나아질 희망조차 없다면 더욱 그렇다. 향수는 커녕 현실을 그저 살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마른 존재인 인간의 목을 끝까지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극 중에는 샌 주니페로 안에서 자극을 찾고 찾다 그것에 잠식되어버린 이들도 소개한다. 나도 한 때 천국이라는 곳을 상상하면 어쩐지 우울해졌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행복한 곳이라 하지만 언제나 배부르고 '해피'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마치 마약쟁이들이 끊어지지 않는 환각 상태에 길바닥에 함께 누워 얼굴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게 아닌가. 


IT기사란에서 사라지지 않는 메타버스라는 주제를 보면 가상현실은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 않다. 완전한 재택근무 혹은 원하는 곳에서 버튼 하나만으로 출근하기, 키보드로 움직이던 캐릭터를 직접 내 몸으로 움직이는 게임, 8일 만에 세계 여행을 집에 앉아서 하기. 우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내 삶이 얼마나 편하게, 더 나아갈지를 생각한다. [블랙미러 - 샌 주니페로] 에피소드를 처음 본 건 요양원에 오기 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요키와 켈리가 그렇게 확대되어 보이지 않았다. '재화가 있나?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지나? 법이라는 건, 규칙이라는 게 있을까?' 샌 주니페로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현재 요양원에 다니며 이 에피소드를 다시 보았을 때 요키와 켈리에서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그들이 한 주에 한번이라도 자유를 누리고 오실 수 있다면 어떨까. 주말을 쉬고 돌아와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릴 때 그들의 눈에서 생기를 보고 싶다. 이번 주엔 샌 주니페로의 어디를 다녀왔다고, 아름다웠고 즐거웠다고 그들의 모험담을 듣고 싶다.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한 주가 기다려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시선에서 메타버스 세상을 들여다보게 해준 영화 [레디 플레이 원]

샌 주니페로가 어떤 공간이든 간에 현실에도 이런 공간이 어르신들께 열려있다면 좋겠다. 삶의 목적과 이유가 없는 생은 견뎌내기가 너무 어렵다. 출근이니 게임이니 다 좋지만 조금은 어르신들을 향해 초점을 맞춘 메타버스는 없을까. 지금은 우리 어르신들이 '제페토'의 캐릭터 하나라도 되시기가 힘들다. 더 기술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길 기대하면서 지금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나은 어르신과 이서 어르신께 가야지. 그들에게 한 번 더 눈을 맞춰주고 인사해야지. 다른 어르신들께 반갑게 안부를 물어야지. 할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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