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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Jul 27. 2022

집으로

어르신들께 집이란?

전 요양원에 근무하게 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였다. 나처럼 요양원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새로 오신 어르신이었다. 지금은 인상착의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분의 행동과 모습이 요양원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아 한동안은 머릿속에서 지우기가 어려웠다. 어르신은 가족들과 함께 오셨다. 어르신을 이곳에 모시게 되어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시는 가족 분들의 모습에 내가 다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가족분들이 등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생겼다. 얌전해 보이시던 어르신이 가족분들이 사라지자마자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고 집에 보내달라고 떼를 쓰셨다. 그녀의 요구는 좌절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어르신은 더 강력하게 당신의 의사를 표현하셨다. 목소리는 점점 커져 사무실 전체를 울렸고 어르신은 복도 바닥에 누워 온 팔과 다리를 사용해 그녀의 답답함을 내뿜으셨다.

집 보내달라고!!!


내 당황한 표정을 읽으셨는지 시설장님은 내게 다가와 설명하셨다. 

"어르신들이 새로 오실 때면 2주 정도는 다들 적응하시는 기간이 필요하셔요. 처음에는 저렇게 집에 가겠다고 하시지만, 결국 이곳이 새로운 내 집이구나를 받아들이시곤 해요. 이 분은 조금 더 과격하시긴 하네요." 

지금 일하고 있는 요양원에서도 꽤 많은 어르신들을 새로 만나 뵈었다. 2주라는 기간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처음에 받아들이지 못하시던 어르신들도 어느새 조용히 공동체의 일원이 되신다. 


당연하게도 새로 오신 분들만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계셨던 어르신도 주기적으로 집을 가고자 하셨다. 그날도 어르신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손짓하셨다. 

"집에 가야 해. 나를 좀 데려다줘." 

"어르신 저는 못 데려다 드려요. 저한테는 권한이 없어요. 여기가 집이잖아요. 어디를 가시려고."

어르신이 집에 가자하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서로의 답은 정해져 있는데 마음은 반대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할 수 없다고 못 한다고 거절하는 것뿐. 이곳이 새로운 집이라는 것을 당연히 어르신은 이해하시지도, 이해하려 하시지도 않는다.

"뭔 소리여 집에 가야 한다니까."


이제는 어르신께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안다. 집에 가자는 어르신께 이렇게 말한다.

"어르신, 곧 있으면 점심인데 점심 드시고 가셔야지. 밥 맛있게 드시고 이따가 저랑 같이 집에 가요."

가끔 어르신이 당장 가고 싶어 하실 때면,

"아이고 어르신 어떻게 식사 한 번도 안 드리고 가시게 둬. 저 그렇게 못해요."

하고 정을 들이밀며 당신 가시는 길 배부르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표현하면 거절하시는 분은 별로 없다. 어르신들께 집이란 뭘까. 요양원을 집이라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은 얼마 없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릴 일이 있어 유나 어르신을 뵈러 오신 보호자님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일이 있었다. 가만히 있기가 뭐해 적막을 깨려 먼저 물었다.

"집이 요 앞이시라고요?"

의도와는 달리 보호자님의 눈이 굴러가며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되물으신다. 

"아, 유나 어르신께서 언제나 그렇게 말하시거든요."

"아~ 저희 어머니가 그러세요?"

"네. 집이 그리우신가 봐요."

"예전에는 거기 살았었는데, 이제는 이사했어요."


내가 사는 집, 내가 자는 방. 10년 넘게 나의 숨을 편하게 내쉴 수 있던 곳. 모든 공간이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곳이 온전히 내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나도 방도 서로 합의했다. 이곳이 내 공간이고 나만의 공간이다. 같이 지내는 가족들도 함께 합의했다. 술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귀신같이 걸어 들어오는 곳. 잔뜩 긴장했던 몸을 나른하게 늘어뜨리는 곳. 그런데 어르신은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하나. 요양원은 어르신들의 얼마 남지 않은 기억 서랍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인다. 붙들고 있기도 힘든데 새로운 것들을 채우기에는 벅차다. 설상가상으로 유나 어르신이 돌아가려 하는 그 집은 어르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 이 세상에 이제 없다. 


이전 요양원에서 만나뵈었던, 복도에 누워 두 팔다리를 흔들던 어르신은 결국 적응에 실패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감사를 전하던 보호자분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조금 마음이 아파졌다. 다른 요양원이라면 그녀의 집이 되어줄 수 있을까. 


유나 어르신이 집에 가고 싶어 하시던 다른 날이었다. 나는 묻고 싶어 졌다.

"어르신, 왜 그렇게 집에 가고 싶으신 거에요?"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르신도 그렇게 느끼셨는지 짜증을 섞어 대답하신다.

"하유,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왜 가고 싶긴, 집에 가는데 이유가 왜 있어. 그냥 가는 거지. 집에 가면 가족들이 있잖아."


어르신께는 가족들이 있는 곳이 집이었다. 현실에서는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각자의 보금자리를 차렸더라도 그들을 기르고 함께 살아온 그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어르신께는 집인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든 그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곳. 온 구석에서 향수가 불어 일으켜지는 그곳. 어르신께는 이사 간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조금 있으면 집에 갈 거에요. 대신 건강해져야 갈 수 있으니까, 밥도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야 해요. 알겠죠?" 

어르신이 대답하셨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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