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나님 Oct 29. 2022

배우도 아니지만

섬망증과 치매

나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애가 둘이 달린 아빠다. 첫째와 둘째는 각각 6살과 4살쯤 되었는데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조차도 매일 놀란다. 아이들은 내가 일하러 왔을 때는 보통 유치원에 가 있다. 날 닮은 놈들이 참 귀엽지만 너무 뛰어다녀서 요양원에 데려오기가 어렵다. 요양원에 얼굴을 자주 비추지만 내가 업으로 하고 있는 것은 농사다. 10,000평쯤 되는 땅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데, 짬을 내서 요양원에 매일 오다시피 한다. 아니 20,000평 정도 되었던가. 아내는 요양원에 들르는 이 순간에도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같이 요양원에 오기도 하는데, 아내는 사회복지사 일도 같이 겸하는 중이다. 내 별명은 야문이다. 청소를 참 구석구석까지 잘해서 사람이 참 야무지다는 뜻이다. 


또는,

소중한 옷을 훔쳐간 도둑놈이다. 그녀의 살림살이를 다 가져가 놓고는 염치도 없이 식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꼴도 보기 싫은데 자꾸 와서 밥을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한 때는 그녀를 죽이려고 방에 들어갔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그 뒤에는 그녀의 목을 졸라버릴 사람이다. 그녀는 죽음을 피하고 싶은 지 죽음을 원하는지 모르게 애매한 반응으로 나를 맞는다. 


또는,

어르신의 시동생이다. 근데 왜 이렇게 남처럼 대하는지 모르겠다. 시동생이 아닌가? 이곳저곳이 참 다 예쁘다. 마스크를 벗으면 더 잘생겼는데 아무리 요청을 받아도 잘 벗어주지 않는다. 코로나라는 역병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노래를 참 잘했는데, 언제부턴가는 잘 불러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26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없다. 어르신이 나의 와이프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나를 담당하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다. 선생님들과 매일 아침 라운딩을 돌 때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어르신께 우리는 백년가약을 맺은 관계가 되었다. 청소를 야무지게 하기는 한다만 농사짓는 일은 하나도 모른다. 어르신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은 절대 없다. 터놓고 말해서 관심도 없지만, 오해를 살 수 있어 더욱이 피하는 일이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거나 식사를 드리기 위해 방을 들어간 적은 많지만, 살의를 가진 적은 당연히 없다. 어르신의 시동생도 아니며 노래를 불러드린 적은 있지만 어르신이 더 잘 부르신다. 그걸 조금 따라 불러드렸었다.



출처: MBC

부캐의 시대가 왔다. 이곳 요양원도 마찬가지. 방이면 방마다 나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있다. 마치 작가가 만들어놓은 대본과 배역에 맞춰 연기하는 배우처럼 어르신들이 만들어 준 스토리와 나를 연기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역은 지유 어르신이 만들어주셨다. 그녀의 방에 들어갈 때면 나는 애 달린 유부남이 된다. 나도 만나보지 못한 내 와이프와 아이들을 처음 찾으실 때는 당황해서 부정도 해봤다.

"어르신 제가 아이가 어딨어요. 저 아직 대학생이에요. 여기 군대 복무하러 온 거예요."

"무슨 소리여, 거짓말하지 말어. 늙은이 놀리는 거 아니야! 내가 다 아는 구만."

옆에서 일하시던 선생님은 어깨너머로 들린 소리에 되려 더 좋아하시며 웃으신다. 그냥 받아들이고 어르신께 맞다고 하라는 선생님의 조언 이후로 나는 지유 어르신의 방에 들어갈 때면 상상력을 마구 펼쳐야 했다.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데리고 올 거야?"

나보다 아이들을 더 찾으시는 지유 어르신께는 매번 유치원이라는 좋은 핑계를 가지고 갔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여기 왔지요. 나중에 꼭 데리고 같이 올게요."

딴에는 선의의 거짓말. 만날 수 없는 만남을 또 약속하고 만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자녀에 대한 물음에는 내 경험 안에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해 드린다. 하지만 더 난감한 대화 주제는 농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이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 중 농사와 관계가 없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대부분의 어르신은 젊은 시절 논이나 밭과 함께 자랐다. 반대로 나는 친가와 외가 모두 서울에 있고 신도시를 따라 살아와 논과 밭을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시골에서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 등의 미디어로 접한 게 전부인 사람이 나였다. 그런 나를 어르신은 2만 평이나 되는 땅을 일구는 농부로 만들어 주신다. 평이라는 단위도 어색해서, 밭의 크기를 말하실 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잘 안 다가왔다. 무슨 작물을 하냐고 물으실 땐 어버버 하다가 고추, 토마토, 옥수수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반사적으로 뱉는 게 최선이었다. 


지유 어르신 방을 나와 복도를 걷다 보면 한쪽에서는 또 하나의 극이 펼쳐지고 있다. 동료 사회복무요원이 민수 어르신과 실랑이 중이다. 악이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는 어르신, 또 물건이 없어졌나 보다. 불쌍한 우리 동료는 방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용의 선상에 올라버린 것이다. 옆에서 아무리 알리바이를 증명해 드려도 어르신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수많은 욕과 폭력적인 손과 발이 복도와 허공에 떠 다닌다.

"그러게 왜 훔쳤어~"

"이번엔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잘 받아주는 동료, 우리는 어르신께 도둑놈이 되어드린다. 우리끼리라도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환기하지 않으면, 애꿎은 감정이 다치기 쉽다.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오면 화를 식히시곤 하지만 처음부터 잃어버린 물건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도둑놈은 괜찮지만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잘 안 된다. 


"죽여!"


그저 아침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방 안의 분위기가 가족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변하는 건 순식간. 무슨 말을 건네든, 설명하든 소용없다. 나는 그녀를 죽이러 방에 왔고 극은 절정에 치닫는 순간이 되었다. 어르신은 이전에도 죽기 위해서 식사를 일부러 안 드시곤 했다. 그렇다고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외침이라기엔 분노가 섞여있다. 그 모호한 외침을 듣다 보면 내 마음도 모호해진다. 가슴이 답답하다가도 마음이 아파온다.


정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어르신들께서 없는 소리를 꾸며내시지는 않는다. 그들의 눈과 귀에 보이고 들렸던 것들을 표출하는 것이다. 치매 혹은 섬망증이라는 병이 만들어 낸 일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어르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가끔씩 '저들이 나와 더 가까운 할머니나, 부모님이라면?'라는 상상을 떨치기 어렵다. 평소와 얼굴은 똑같은데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모습에는 적응이란 없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가장 힘든 분은 그런 당신 같지 않은 당신을 가장 많이 느끼고 인정할 수 없는 어르신일 것이다. 배우도 아니지만 여러 배역을 맡아 요양원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있다. 그렇게 요양원에서의 일과가 끝이 난다.

이전 02화 사랑의 유통기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