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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May 03. 2022

귀여운 게 최고인 이유

따분함을 덜어주는 것

귀여운 건 최강이에요.
'멋있다'의 경우
멋지지 않은 면을 보면
환상이 깨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귀엽다'의 경우는
뭘 해도 귀엽다구요.
귀엽다 앞에서는 모두 복종
두말없이 항복이라 이거에요.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대사가 나온 짤을 필두로 인터넷 곳곳에 귀여운 것이 최고인 이유를 담은 썰들이 소개되곤 했다. 다른 매력들은 헤어 나올 구색이 있지만 귀여움에 빠져버리면 출구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나도 귀여움이라는 감정에 약한 편인데, 이성을 볼 때는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 큰 호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대사와 썰들 모두 연인이나 이성에 관련한 귀여움을 논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귀여움은 광범위하다.


어렸을 때 하늘 같던 부모님을 생각해본다. 나는 40대이던 엄마와 아빠가 곧 내 곁을 떠나실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집에 와서 파스를 붙이고 아프다 하며 잠에 들던 부모님의 모습이 어린 내게 꽤나 무섭게 다가왔다. 그 당시 전 국민의 토요일 저녁을 책임지던 무한도전의 박명수도 언제나 명수 옹, 늙은이 등으로 불리는 이미지였기에 어린 나의 생각은 더 강화되었던 것이다. 2022년 현재, 별명이 어울릴 만한 개그계 대부가 된 명수 옹은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부모님에게 40대 란, 파스 정도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체력에 감사했던 때였다. 어린 나의 걱정과 달리 현재까지도 그들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사계절 내내 부모님 등허리에 덮여있던 새하얀 눈은 이제 없지만, 그렇게 잠이 없던 그들은 요즘 낮밤 가리지 않고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부모님이 변한 건 수면 패턴뿐 아니었다. 그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조금씩 귀여워지고 있다.


엄마와 함께 누나가 신혼살림을 차린 대전에 내려갔을 때였다. 대전의 자랑 성심당에서 이것저것 사서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나와 함께 '이것도 맛있다, 저것도 맛있다, 한번 먹어봐' 하면서 먹고 있는데 엄마가 유독 조용한 게 아닌가. 수상한 엄마의 볼은 조금 빵빵해져 있었고, 있어야 할 빵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 슈... 어디 갔어?"


그날 얼마 만에 그렇게 웃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너희 먹고 싶은 거 먹어"가 아닌 "이거 '오키도키 슈' 먹을까?"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어릴 때 냉장고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슈들이 얼핏 기억도 났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별로 안 좋아한다고, 안 먹는다고 다른 가족에게 넘기는 게 익숙했던 우리 엄마가 혼자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니...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 1회 차 우리의 모습이 부모님에게 느껴지는 순간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귀여우셨나?'

사춘기를 겪으며 젖살과 함께 사라져 간 귀여움은 부메랑처럼 다시 점점 돌아오나 보다. 그저 웃고 있는 아기에게 우리가 무방비 상태가 되듯 어르신에게도 그렇다.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주름살과 커져버린 몸뚱이는 도대체 어디서 귀여움이 나오겠냐고 말하는 듯 하지만 아니다.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는 귀여움이다. 이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지안 씨이다.


지안 어르신은 단언컨대 우리 요양원에서 가장 활발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진정으로 개척자이자 탐험가이다. 하루 종일 세상모르고 주무시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휠체어를 타고 전진하신다. 두 가지를 함께 하시기도 한다. 전진에 3초, 졸음에 30초. 그녀와는 대화가 되는 듯 마는 듯한데, 어쩔 때는 무엇을 여쭙든 "예"로 돌아오지만 어쩔 때는 여쭤보지 않은 말까지도 해주시곤 한다. 다 알아들었다고 떠나셨다가 돌아오시며 까먹어버리신다. 그런 그녀에게는 규칙 하나 알려주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요양원 이곳저곳이 모두 그녀의 산책로이지만 허락되지 않은 곳이 있다. 어르신들에겐 위험한 곳이라든지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못하는 막다른 좁은 곳. 그런 위치마다 우리 사회복무요원들이 안전요원처럼 지키고 있다.

"이곳으로는 더 갈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

"여기는 오시면 안 돼요, 꺾어서 저기로 가세요."

수 없이 많이도 말씀드리고, 수 없이 많은 대답이 돌아왔지만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모험을 다녀온 지안의 탐험에 밝혀지지 않은 장소는 이곳뿐이다. 그녀는 가야 하고, 우리는 막아선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일을 돕던 동료 요원이 갑자기 냅다 달려간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안 씨가 기회를 노리고 궁금증을 해소하러 가고 있던 것이다. 1차 저지선인 책상에 막혀 애꿎은 휠체어 바퀴만 헛돌고 있는 동안 동료 요원이 도착했다. 그리고 또 반복. 여기로 가시면 안 돼요. 돌아가세요. 가끔 우리가 먼저 저지하지 못해 테라스 같은 어르신들께 위험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녀를 발견하게 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언제 어떻게 저기까지 가신 거야.'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귀찮고 따분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그녀가 어르신이어서가 아니라 귀여워서이다. 안된다는 말에도 짜증보다 빙그레 웃으시며 엉뚱한 말을 하시곤 돌아가시는 모습에서 귀찮음을, 밥을 드시러 가야 한다는 우리의 말에 '좋아, 밥! 밥, 좋아!' 하시면서 휠체어를 더 힘 있게 미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따분함을 덜어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녀의 외모는 굳이 표현하자면 우스꽝스럽다. 지나치게 크고 납작한 코에 상반되는 작은 눈. 이미 다 쭈글쭈글해진 피부. 하지만 그게 참 사랑스럽다. 그게 뭐냐, 그게 귀엽냐는 분들에게는 말만으로 다 전달드리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존재 자체가 말로 다 담을 수 없이 귀여운 게 아기 아닌가, 마찬가지다.


요양원을 돌아다니다 지안 씨의 눈에 우리가 비치면 언제나 그녀는 멈춰 서서 한 손을 내미신다. 맞춰서 손을 내밀어 드리면 부드럽지만 꽉 잡으시며 남은 한 손으로 손등을 쓰담쓰담, 쓰담쓰담. 손을 놓아주시는 것은 그날에 따라 다르다. 한 번은 몇 분을 잡고 있었는데도 손을 놓으려 하면 다시 꽉 잡으셔서 힘을 써서 손을 빼는데, 빼는 손을 다시 잡아버리셔서 그대로 더 함께 있어드렸다.


이따금씩 이 세계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과 사는 이어져있다던가, 눈을 꿈뻑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귀여움으로 세상을 시작하는 아기들과 손에 쥔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다 귀여움만 남아버린 그들은 다르지만 같아 보인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귀여운 것은 곧 생존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손길이 없이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끝내기도 어려운 존재다. 아무 관계없는 그들에게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감정에도 다시 할 수 있는 마음을 주는 이유는 이런저런 설명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귀여운 게 최고다. 귀여운 게 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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