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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Mar 18. 2022

요양원의 냄새

모두 같은 사람 냄새

친할머니 댁에 갈 때면 현관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쾨쾨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릴 때가 있었다. 길을 걷다 지나친 사람의 향기를 어디선가 다시 맡고는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향은 무엇을 기억하는 데 훌륭한 재료이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반대로 그 향이 떠오르기도 했다. 할머니를 연상하는 데에 쓰여버린 냄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게 될 할머니와의 거리를 만들어 버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상한 냄새가 코에 익숙해질 쯤이면 어느새 옷과 머리에 그 냄새가 밴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몰래 옷에 코를 대기도 했다.

부끄러운 생각들이었지만 나만이 가진 경험은 아닐 것이다. 어떤 공간의 분위기를 규정지을 때 향이 굉장한 영향을 끼친다. 책이나 미디어 등에서 보여주던 노인의 이미지에는 냄새가 포함되어있었다. 요양원에서 일하게 된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요양원의 냄새에 대한 걱정을 자주 듣는다.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공간은 향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리라. 그런 시선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인생 처음 방문한 요양원은 친할머니 댁의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 정확히 같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같은 결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코 속에 가득해졌다. 대충 놓아진 엔틱한 가구들의 모습은 냄새를 한층 강화시켰다. 새로 들어선 공간, 긴장한 채로 사람들을 익히고 적응하며 냄새는 어느새 어디론가 멀어져 있었다. 빠른 시간만에 둔해지는 코의 능력에 감사한 날이었다. 하루하루 출근 일을 더해가며 나는 냄새에 익숙해졌다.

두 번째로 배정된 다른 요양원의 문을 긴장한 손으로 열 때 나는 또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먼저 떠오르는 건 냄새였다. 이곳은 또 어떤 냄새가 나를 반길까. 문이 열리고 바람이 내 팔을 스쳐갔지만 별 냄새랄 게 없었다. 창들을 활짝 연 요양원의 로비에서 쾌적한 공기가 느껴졌다. 첫 요양원을 통해 다져진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요양원은 악취로 가득한 곳이 아니다. 오래 지낼 곳에서 냄새와 동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환기를 통해서 그리고 깨끗이 관리해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노고를 통해서 대부분의 시간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어르신과 대화할 때와 어르신들이 기저귀를 가실 때이다. 매일 라운딩을 돌며 인사를 드릴 때면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곤 하는데, 꼼짝없이 입냄새의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어르신과는 웃으며 얘기하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잘 계시나 복도를 돌아다니며 확인할 때도 냄새를 맡는다. 볼 일을 보셨거나 기저귀를 갈고 계신 어르신이 있는 방에서 복도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이다. 방마다 어르신들 고유의 냄새가 있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의 땀이나 변에 관련 성분이 남아 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기저질환이 없는 분이 없는 이곳에는 약의 종류 또한 수십 가지다. 요양원은 곧 냄새 그 자체는 아니지만 냄새를 피할 수는 없는 곳이다.


어느 날 일과를 보내다 속이 안 좋아 화장실로 갔다. 볼 일을 보는데 되게 익숙한 냄새가 났다. 25년 간 맡은 냄새니까 그런 게 아니라 방금 복도를 지나며 맡은 그 냄새였다. 또 다른 날은 앉은자리에서 순간 괄약근의 힘을 풀어버렸는데 방귀가 나와버렸다. 내 자리 옆을 지나가던 간호 선생님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부르시더니 내 책상 옆의 방을 가리키시며

"여기 어르신 또 용변 봤나 봐 기저귀 좀 갈아줘~ 아휴."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민망했다. 어르신에게 오해를 씌운 것에도 부끄러웠지만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이 떠올라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악취를 피할 수 없는 공간 요양원.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냄새가 없는 공간은 없다. 디퓨저 향기로 가득 차던 내 방도 술을 잔뜩 먹고 와 바로 잠에든 나를 거치면 엄마가 들어와 미간을 찌푸리는 공간이 된다. 귀찮다고 세탁을 미루던 내 침구류는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걷어가는 어르신들의 이부자리보다 쿰쿰한 냄새가 난다. 어르신들에게서만 냄새를 찾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었다.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인데, 조금 더 잘 숨길 수 있다는 이유로 향기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생각에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요양원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를 맡는 게 지금도 좋지는 않지만, 싫지도 않아졌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요양원은 냄새나는 곳이 맞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듯 사람 사는 곳에서 냄새 안나지 않는다. 마땅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몸에서 나는 체취는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에서 나는 냄새는 당연하지 않다. 향기 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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