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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나님 Mar 18. 2022

사랑의 유통기한

3년? 그 이상?

타임지에 실린 말, 사랑의 유통기한은 3년. 우리에게 설렘과 떨리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은 개인 차가 있지만 한 대상에게 3년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3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떨리는 연애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 일이나 취미,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적용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업무만, 동일한 취미만 3년 이상을 꾸준한 열정으로 대하는 것은 지치기 마련이다. 뜨거울수록 식는 속도도 빠르다.


코로나의 발발. 요양원은 외부인에게 엄금 장소가 되었다. 밖에서 오는 모든 이들의 코트 깃에 혹시 묻어있을 바이러스에 면회는 곧 부담이 되었다. 가족을 아예 보지 못할 수도 없는 일, 면회는 최소한으로 진행되었다. 보호자가 요양원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을 끼고 간단한 대화 정도 나누는 것 마저도 10분 내외이다. 복무하는 동안 코로나의 위험이 언제나 함께 했기에 몰랐지만 이전에는 보호자들이 면회도 자주 오고 어르신들과 시간도 오래 보내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든 말든 격주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보이시는 분이 계셨다. 할아버지께는 요양원에 오시는 것이 소박한 하루의 일과처럼 느껴졌다. 어떤 목표를 위해서 달력에 체크해두고 이것저것 잔뜩 준비해서 해내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우유를 마셔야 하는데 우유가 없어 가벼이 옷을 입고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는 그런 정도의 무게감이다.


할아버지는 백발을 모자로 가리시고 신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단정한 차림에 한 손엔 언제나 팥양갱과 밤양갱 두 개를 들고 오신다. 오다 주웠다는 말을 직접 하진 않으셨지만 어르신 손으로 넘겨지며 양갱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특별할 것 없는 방문에 맞게 할머니는 찾아온 할아버지보다 양갱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멀어진 거리 때문에 할아버지는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내 외치신다.

"잘 지내요?"

"불편한 데는 없어요?"

"내가 누군지 기억나요?"

지극히도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예."

"예."

"예."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시는지 마는지 계속 양갱에 온 집중이 쏠려 계시다. 간단히 어떻게 지내시는 지를 요양 보호사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신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양갱을 들고 오실 테다. 별 거 없는 날에, 아무렇지 않게 '예' 한마디를 들으려. 과일이며 떡이며 두 손이 가득한 가족들의 방문보다 할아버지의 양갱에 더 큰 사랑이 느껴졌다. 이 두 분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금은 일방적이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검은 뿌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소. 결혼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클리셰 같은 고백이다. 사회의 선배들은 결혼을 포기한다고 한다. 결혼의 선배들의 이혼율은 증가하고 출산율은 이례적인 숫자가 나오고 있다. 당장 나만해도 부모님께 결혼 안 하고 평생 함께 살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아직까지는 농담지만 점점 진담이 될 수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어릴 때 배웠던 내용과 다른 세상이,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는 것이 클리셰가 되지 않는 사회가 오고 있다. 사촌 형이 내게 말했다.

"결혼 생각이 있으면 20대 안에 해야 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혼을 못 할 이유만 늘어나."

집, 차, 직장, 성격, 가치관, 육아...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대보다 보면 레이더 망을 피할 사람은 없다.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그의 가벼운 방문들이 내게 가볍지 않은 감동으로 이어졌던 이유는 할아버지를 통해 답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가 지금까지 한계를 시험받는 일들이 얼마나 됐을지 쉽게 상상해보지도 못하겠다. 요양원에 오게 되는 과정, 육체적 단절과 치매라는 지독한 병에 의한 정신적 단절까지도 그들을 떼어낼 수 없었다. 평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금 가진 감정을 변함없이 간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시간을 녹여 그때마다 새로이 사랑하겠다는 것이리라. 변하는 상대와 상황에 맞춰 나의 사랑도 변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도 그에 맞는 형태로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것.


결혼에 있어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정말 나는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받을 수 있는가. 집, 차, 직장 그러나 양갱. 할아버지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없이 지금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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