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결국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던 회사의 특징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를 나가는 건 이성적으로는 하면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삶이란 이성적인 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나는 결국 퇴사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이 좋기만 했다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오늘은 내가 왜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지, 회사 탓을 좀 해보도록 하겠다. 어차피 나온 회사,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지(덜덜 떨며).
사진: Unsplash의Joshua Davis
첫 번째는 회사의 절대 바꿀 수 없는 시스템, 순환근무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팀이 바뀌고 몇 달이 지나 이제는 새 팀에 적응을 어느 정도 했다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회계팀에서 전화가 온다. 받아보니 지난주까지 기금 원천세 지출결의를 했어야 했는데 내가 담당하는 사업은 하지 않았기에 확인차 전화했단다. 그때 나는 '기금 원천세 지출결의'라는 업무가 존재했음을 새로 알게 된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너무 싫었다. 2~3년에 한 번씩 팀을 거의 무조건 옮겨야 하고, 옮기면 전혀 다른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그 업무는 이전에 내가 했던 업무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지출결의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안 그러면 필연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걸 십 년이 넘게 하고 있으려니 너무 피로하고 지쳤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이 회사를 나올 때까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인수인계를 아무리 잘 받더라도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하루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이어지는데, 순환근무로 인해 도무지 커리어란 것을 이어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케팅팀에 있다가 갑자기 예산팀에 가고, 예산팀에 있다가 갑자기 대외협력팀에 가는(감동실화) 팀 이동을 경험하고 나니 아무리 소설을 잘 쓰더라도 내 커리어를 연계성 있게 말하기는 불가능했다. 이직을 해볼까 할 때도, 이직하려는 회사와 관련 없는 팀에 있던 경력은 모두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보장도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승진할수록 경력은 점점 더 꼬여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누군가는 이런 순환근무 구조가 일이 지루해질 때쯤 환기해 줄 수 있어서 좋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공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소원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승진을 해나가면서 느꼈던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바로 사내 정치의 힘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다 그렇겠지만, 저연차 때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사내 정치라 해도 그냥 인사나 잘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연차가 찰수록, 위로 올라갈수록 승진에 그 무엇보다 정치가 중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회사의 메인스트림에 올라타 있어야만 승진도 잘 되고, 평판도 좋아지고, 생활도 편해졌다. 그런데 난 도무지 이 정치라는 것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승진을 남들보다 늦게 하지 않기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내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일만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눈치채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를 잘하는 게 결국 일을 잘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더욱 처절히 느꼈다. 나, 아직 회사와 완전히 정신적 이별에 성공하지 못했구나!라는 것을. 회사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고 어디까지는 마음속에 묻어놔야 할지 아직은 혼란스러운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 외에도 회사 밖으로 나와야만 했던 크리티컬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정리되지 못해서 아직 뱉어낼 수 없다. 지금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솔직히 말해보려 애썼다. 현재의 나로선 이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