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렇게 살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나는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도 회사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나날들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근해가며 PPT를 만들고, 늦은 밤까지 검토하다 도저히 안 되니까 집까지 서류들을 싸가서 새벽 세 시까지 울면서 정리했던 기억 같은 것. 기본적으로 성실한 성격이었던 나는(이건 솔직히 자타공인임) 일도 무식할 정도로 성실하게 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몇 가지 아주 자잘한 계기들이 있었다. 야근하면서 일하는 건 스마트하지 못한 거라는 상사의 말이나 새벽까지 검토해서 무리한 일정에 맞춰 정리해가도 칭찬 한 마디 없는 사내 분위기 같은. 어쩌면 내가 회사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그런 계기들로 인해 십 년 넘게 일한 나는 평범한 공공기관 직원 1이 되었다. 일이 늘어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최대한 모든 일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사원이 되었다는 뜻이다. 공공기관의 일이라는 게 그랬다. 일을 더한다고 딱히 내 성과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사 지적받을 사항만 늘어나는 놀라운 매직이 계속되니 누군가(대체로 나의 갑님) 새로운 일을 얹어주려 하면 표정부터 썩어가게 되었다. 아, 또 새로운 일이 떨어지네. 저거 하면 나중에 이게 골치 아픈데.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온몸으로 새로운 일을 거부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 나의 갑님이 새 미션을 부여하면, 그게 안 되는 이유부터 찾고 있는 나. 물론 지난 10여 년의 공기업 생활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일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버텨서 안 하는 게 미래의 나에게 무조건 이득이라고. 괜히 도전적으로 달려들었다간 불 꺼진 사무실에서 나혼자 야근하고 그 누구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번 일도 어떻게든 뭉개서 받지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갑자기 생각했던 것이다. 평생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사실 나는 울면서 야근했던 그 시절의 나를 조금은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뭔가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고 뿌듯한 마음을 갖는 일련의 과정을 말이다. 다만 공공기관 특성상 그에 걸맞는 인정이나 포상(?)을 받지 못하니 그런 삶의 방식을 포기했던 것이다. 비효율적이니까. 그리고 공공기관에 맞게, 나를 스스로 바꿔나갔다. 들어오는 일 최대한 막고, 들어온 일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대충 하는 흐름으로. 그게 효율적이니까. 그게 정답인 것은 나도 알았다. 앞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쭉 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자꾸만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었다. 너 정말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어? 모든 것을 안 하고 싶어하며, 하는 일은 대충 하며, 그렇게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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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ave Lowe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게 평생의 꿈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뭐든 한다면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그 과정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확신이 드는 순간, 퇴사에 대한 내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내가 원하는 내 삶의 방식(열심히, 잘)을 회사에서 펼치고 싶지는 않았다(펼쳐서도 안 되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회사 밖으로 나가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내 열심을 바치고 싶었다. 내 남은 인생은 그렇게 쓰는 게 맞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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