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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Dec 26. 2022

회식,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는 것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회식'을 마주할 때마다 늘 그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외친다. '피할 수 없지만 즐길 수도 없다고!' 


  소위 MZ세대는 개인주의자들이라 회식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법카 또는 상사의 카드로 맛난 걸 먹을 수 있는 회식을 젊은이들이 꽤나 즐긴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소고기 회식이라면 아무리 가기 싫었던 회식이어도 갑자기 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기사에 나오는 젊은이가 아닌 건 확실하다. '회식'이라면 소고기는 물론이고 인당 30만원짜리 오마카세여도 거부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니 말이다.(사실 이 글은 이 문단을 쓰기 위해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회식'이란 무엇인가? 회사에서 부서 단위로, 또는 상위 부서단위로 팀장부터 막내사원까지 모두가 모여 식사(주로 저녁)를 하는 행위를 말할 것이다. 보통 윗사람들은 '부서 회의비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숭고한 행위'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윗사람들의 생각이다. 나같이 천성이 예민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회식이란 '밥도 편하게 먹지 못하게 하는 (심지어 업무시간 외 내 저녁시간까지 빼앗아 가는)' 그 어떤 것이다. 좋게 볼래야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다. 


Photo by Kelsey Knight on Unsplash



  하지만 이런 나조차 회식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저연차 사원일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일이 꽤나 빡센(힘든) 부서에 있었는데, 일은 힘들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는 꽤나 의지하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회식 자리는 괴로운 감정봉사 자리가 아니라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으로 여겨지곤 했다. 1차 끝나고 집에 갈까 할 때면 '2차 안가요?'를 내가 외치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거 같다). 그때는 왜 그게 가능했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중요한 건 '누구와' 가느냐인 것 같다. 당시에 나는 팀에 꽤나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다. 존경하는 만큼 평소에 궁금한 것도 많고 이런 업무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연차 차이가 나니 쉽게 물어보기엔 좀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그런 선배가 회식 때가 되면 늘 나를 부르며 하는 말이 있었다. '자, 이제 ㅇㅇ씨 얘기 해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거 같은데?' 그 말에 힘을 받아 나는 평소 업무시간에 물어보지 못했던 자잘한 질문들을 해댔고 선배들은 이런저런 대답과 조언들을 해줬던 것 같다. 그래서 회식 자리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아주 살짝은 기다려지기도 했다(세상에).


 회식 자리가 (상대적으로) 젊은 직원에게 고통의 시간이 될지, 아니면 평소 업무시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될지는 그 자리의 주최자(최고 상사)에게 달렸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30만원짜리 오마카세를 먹으며 윗사람의 훈계를 듣기보다는, 기본안주만 먹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회식자리에 가기를 선택할 것이다(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송년회니 신년회니 하며 회식이 많은 시즌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메뉴와 상관없이 마음이 편안한 회식에만 참석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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