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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Apr 27. 2022

코로나와 '업무공백'

코로나에 걸린 직원에게 회사가, 리더가 할 말은?

  나 같은 집순이는 평소 생활패턴에서 조금만 더 조심하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이었다. 최근 몇 달간 내 동선은 회사-집-회사-집-회사-병원-집 정도였으니까. 가끔 쇼핑을 위해 외출하더라도 마스크 벗고 뭔가를 하는 곳(식당/카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슬아슬 코로나에서 비껴가던 나날이 지나고,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ㅇㅇ 사무실에서 2명이 나왔대' '우리 옆 사무실에서 확진자 나왔대'라는 이야기가 점점 들려오더니, 결국 우리 사무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회사에서만큼은 걸리고 싶지 않다'를 외치고 다녔던 나는, 기어코 회사에서 옮아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남들보다 크게 덜 아프지도 않고 더 아프지도 않았다. 발열, 구토, 근육통, 기침과 콧물 정도? 전에 앓았던 독감보다 약간 더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내가 코로나에 걸렸던 그 주에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던 주는 회사에서 특히 코로나 환자가 많았던 주였다(높은 확률로 회사에서 옮은 사람이 많아서였다). 그 말인즉슨, 내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확진되어 앓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 그대로 열 나는 머리를 이끌고, 자료를 만들고 메일을 보내며 억지로 일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대신해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서 꾸역꾸역 일하던 중, 회사 내부 직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공지글이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내용을 대략 요약하면 이랬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업무 마비가 일어나고 있는 팀들이 있다.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업무공백이 없도록 유의해라'




  왜였을까? 그전까지는 아팠지만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공지를 보는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지고 대신 화가 치밀었다. 높은 확률로 회사에서 코로나에 걸려서, 쉬지도 못하고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세게 펀치를 한 대 날린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그 주에 구멍 없이(일단은) 업무를 다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아픈) 팀원들이 도와주고, 선배들이 고생이 너무 많았다고 격려해줬지만 내 기억에 강하게 자리 잡은 건 회사 총무팀에서 올린 '업무공백이 없도록 유의하라'는 공지글 뿐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걸린 질병으로 아파도 회사는 업무의 공백만을 걱정하는구나.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좋은 리더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직원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일의 성과를 끌어올려주는 사람도 좋은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좋은 리더는, 직원을 사람으로 보는 리더이다. 직원들이 전부 코로나에 걸려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려워졌을 때, 물론 리더도 당황하겠지. '업무 공백'이 우려되어 아픈 직원에게 어쩔 수 없이 일을 지시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리더라면, 좋은 사람인 리더라면 업무공백 우려를 표하는 공지글을 쓸 때 첫마디로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업무공백이 없도록 유의하라' 대신, '많은 직원들이 코로나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모두 잘 회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사무실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는 말을 먼저 쓸 것이다. 업무 공백에 대한 우려는 그다음에 표해도 늦지 않다. 부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는 후자에 해당하는 리더가 많기를 기원한다. 결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한 명 한 명은 모두 아프면 서러운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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