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홍 Dec 22. 2024

쥐어짜 내서라도 주고 싶은, 그게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할머니의 마음을 거절하지 않기로 다짐한 날

나는 42년생 외할머니와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어린 시절, 몇 년을 같이 살았기에 친해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도(같이 살지는 않지만) 매주 한 번씩은 만날 만큼 여전히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지금 할머니와 함께 유튜브를 운영할 수 있게 해준 큰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나는 지난해부터 외할머니와 <귀한 녀자 귀녀 씨>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와 워낙 친한 탓에 애교도 부리고 장난스레 말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자주 웃고 많이 떠든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평소의 할머니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저께, 나 너한테 되게 서운했다. 그거 얘기해 주려고."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할머니한테 실수한 게 있었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가진 건 없어도 네가 오면 차비라도 주고 싶잖아. 그래서 차비는 있냐고 물었더니, 네가 "내가 차비도 없는 줄 아시냐"고 얘기하는데 그게 너무 서운하더라."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그날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나의 주머니에 넣어준 꼬깃꼬깃한 마음.


할머니는 항상 단돈 만 원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신다.


나는 그게 부담스럽고 죄송해서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내 주머니에 차비를 찔러넣어 주신다.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있다. 젊은 시절엔 밥도 많이 굶었다던 할머니는 지금도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리시곤 한다.


또 요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병원에 다니시느라, 매달 들어가는 의료비만 해도 수십만 원이 넘는다. 종종 할머니가 "병원비 때문에 카드값이 장난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나는 내가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어려운 형편에 쥐어짜 내서라도 나를 챙겨주시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 마음을 쉽게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날도 장난스레 "나 차비 있거든요. 괜찮거든요."라고 이야기한 것인데, 할머니는 그 말이 굉장히 서운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주시는 차비를 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까지도 거절해 버린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알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할머니의 마음을 장난스럽게 거절한 것이 너무 죄송했다. 내 한마디가 할머니의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는 것 또한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나는 바로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 그건 오해예요. 할머니도 여기저기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자꾸 돈을 주시려고 하니까 내가 그렇게 이야기한 거지. 절대 할머니를 무시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그럼 됐다"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앞으로 할머니의 마음을 거절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돌려드리더라도, 우선 주시는 마음은 꼭 감사히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른이 주는 건 받으라'는 옛말이 있는가보다. 가진 건 없어도 뭐든 주고 싶은 그 마음을, 그 사랑을 기쁘게 받아주는 것은 어른들께 무엇보다 값진 행복이 되는 것 같다.


이제라도 그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할머니가 주시는 꼬깃꼬깃한 사랑을, 나는 고이고이 간직할 것이다. 주머니에 찔러넣은 할머니의 마음에 환한 미소로 답장할 것을 다짐해 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