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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23. 2023

성숙과 여유 사이

마른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 소파에 놓았다. 산더미 같은 빨래 ⎯ 낯설다.


우리보다 먼저 떠난 이삿짐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어디쯤 오고 있을까. 내 짐들이 그리워진다. 어디서 추위에 떨고들 있지나 않은지, 어둔 데서 무섭지나 않은지 걱정이 된다.

짐 도착이 예상보다 늦어지니 아이들 집에 얹혀 지내는 시간도 덩달아 늘고 있다. 사나흘이면 끝날 줄 알았던 네 식구 좁은 동거가 벌써 며칠 짼지 모르겠다.

첫째는 출퇴근하느라 바쁘다. 저녁 약속이라도 있는 날엔 얼굴 볼 새도 없다. 집에서 일하는 날도 끊임없는 줌 미팅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운다.

대학에 다니는 둘째는 학교 등교와 온라인 수업으로 긴장의 연속이고 틈틈이 과제와 미팅, 클럽활동, 주말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도 없어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도 아닌데, 나는 아이들 집에만 오면 엄마 모드로 자동 세팅된다. 바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쉴 시간을 주고 싶어 살림을 자진해 도맡는다. 빨래부터 끼니 챙기기, 먹거리 사 오기, 설거지, 그리고 청소는 남편과 같이 한다.

간소화가 삶의 모토인 내가 아이들의 어질러진 방과 그 사이를 자유롭게 굴러다니는 먼지를 못 견뎌하는 걸 남편은 안다. 애처가가 아닌 애딸가 남편, 아이들이 내게 싫은 소리 듣는 걸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직접 나서서 치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집은 천사표 아빠 마녀표 엄마의 구도가 확실한 셈이다.


아이들 집에 올 때마다 정리와 청소를 도와주건만, 몇 개월 후 다시 오면 도로 그전으로 돌아가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생겨나는 머리카락,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들, 생물학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냉장고 반찬통 속 갖가지 색깔의 곰팡이를 모두 구경한 후, 나는 드디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그래, 여기까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그들은 이미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인데 더 이상의 도움이나 잔소리는 간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영역은 스스로가 책임지는 게 맞는 것 같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옷장 안에서 첫째가 입을 옷을 척척 꺼내고, 저래도 안 무너지나 싶은 책더미 속에서 둘째가 단번에 필요한 물건을 끄집어내는 게 그 증거다.


이번엔 신세 지는 입장이라 밥 값이라도 해볼까 하고 살림을 도맡고 있는데, 왠지 쉽지가 않다. 체력이나 게으름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남편과 나 둘만의 살림을 해 온 지 벌써 3년 째니 습관의 문제라고 보는 게 맞겠다. 20대에서 40대에 걸쳐 네 사람 몫의 살림에 시간과 노력을 바쳐오다 어느새 둘 몫의 살림에 익숙해진 것이다. 몸이 기억할 줄 알았는데 내 몸은 어느새 넷이 함께 살던 살림을 다 잊어버렸고, 그때로 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할 일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멍해지거나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집안일은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나 끝 안 보이는 터널처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집안일을 대하는 마음이 밝아졌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음식 만들기도 재미있어졌다. 날라리 주부였던 내가 철이 드나 보다 생각했다.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빨래를 개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성숙해졌거나 살림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할 일의 양이 줄어든 데서 날아든 여유였다는 것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나 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초과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작용이 생기니 말이다.

집안일 뿐 아니라 바깥일, 인간관계 등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해내면 좋겠다. 별다방에서 커피를 살 때 우유 넣을 틈을 남겨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하루를 너무 꽉 채우지 않고 약간의 빈 공간을 나 자신을 위해 남겨두면 좋겠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즐겁게 해내려면 적당한 일의 안배와 시간 관리는 꼭 필요하다. 이런 습관이 루틴이 된다면 소확행 가능한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비좁은 건조기 안에서 어지럽도록 뱅글뱅글 돌다 나온 더운 빨래를 시원한 바람 가득한 마당 빨랫줄에 널어주고 싶어 진다.

온몸에 꽉 들어간 힘을 빼고, 바람에 나풀대는 빨래처럼 향기롭고 가벼운 내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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