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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13. 2022

안 괜찮아도 돼

It's OK to not be OK

우리 집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테니스 코트가 보인다.

여기저기 바닥이 갈라지고 색도 바랜 테니스 코트. 이곳에 이사 온 지 2년째니, 계절이 벌써 일곱 번 바뀌는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맵고 추운 겨울을 지나고 나면 세찬 비와 폭풍의 봄이 기다리고 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의 테니스 코트를 내려다보며 '저 눈이 언제 녹으려나' 하다 보면 어느새 봄비에 눈이 걷혀 있곤 한다. 그리곤 곳곳의 갈라짐과 낡은 네트가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되어 주변 나무들이 울긋불긋해지면 테니스 코트도 덩달아 가을 햇살을 한껏 머금는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저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대신, 아이들이 들어와 공을 갖고 논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이 강아지와 함께 뱅글뱅글 돌다 나가기도 한다.

이쪽 출구로 들어와 저쪽 출구로 그냥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친구 둘, 혹은 셋이 들어와 구석에 앉아서 한참 이야기에 열중하기도 한다.

그들을 보며 문득 저 테니스 코트가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색 바랜 기억들, 갈라진 상처들이 수도 없이 들어차 있을 내 마음.

아무도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아 아직 그대로인 흉터들, 꾹꾹 눌러 담고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 색깔을 잃어버린 기억들, 비가 오면 물이 괴듯 덧나는 상처들, 눈물 배인 자국들...

그 을씨년스러운 내 마음을 사람들이 다녀간다. 그들 또한 그들만의 아픔이나 기쁨을 안고 와 머물기도 하고 혹은 지나가기도 한다.


테니스를 치러 오지 않아도 사람들의 방문을 묵묵히 받아 주는 테니스 코트처럼, 나도 내 마음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머물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할 그들을 맞이하고 또 보내고 싶다. 울타리 밖에서 들어가도 되나 엿보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코트를 반으로 갈라놓았던 네트도 누군가 치운 지 오래다. 언젠가 수리를 하면 반짝이는 새 코트로 다시 태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가 좋다. 테니스 치는 데 쓰이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저 테니스 코트처럼, 나도 꼭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고집을 부리는 대신, 평화가 주는 행복감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내 마음의 갈라짐도 그 온기를 먹고 희미해질지 모른다. 

낮에 찾아오는 햇살과 밤에 머무는 달빛, 그리고 낮게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이 있어 외롭지 않을 테니스 코트처럼, 나도 이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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