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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Nov 15. 2022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McDonald's

볼 일이 있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한적한 일요일 아침,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맥도날드도 한적했다.

더듬더듬 키오스크 주문을 마쳤다. 가성비 좋은 맥도날드 아침 메뉴에 수지맞은 기분이다.

창을 통해 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으니 잠시 후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테이블 서빙을 받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카푸치노를 마시며 홀 안을 둘러보았다. 나까지 포함해 세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열린 랩탑 앞에서 각자의 일에 열중해 있다.

넓은 홀의 고요함. 각자의 세상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다.


잠시 후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오른쪽 뒤에 자리를 잡더니 전화로 누군가와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된다.

읽고 있던 책의 글자들이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음악 삼아 느린 왈츠를 추기 시작할 무렵,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이 전화하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함께 햄버거를 먹는다.

내 책의 글자들이 추던 왈츠가 차차차로 바뀐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 젊은 남자가 그들과 합석한다.

그들의 수다에 글자들이 힙합 댄스로 장르를 바꿔 춤추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 읽던 책을 마저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테이블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순식간에 테이블을 세 개나 차지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익숙한 모국어에 나 어느새 우리나라 왔나 잠깐 착각할 뻔했다.

한인 교회 다니는 분들이 예배 마치고 단체로 온 것 같아 보였다. 격식 있는 정장으로 차려입은 그들은 어디서나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뒤이어, 아이들을 데리고 일요일 아침 나들이 나온 가족들까지 합세해 홀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되었다.

옆 자리 세 사람의 수다는 사람들 말소리에 묻혀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내 책의 글자들은 숫제 발까지 탕탕 구르며 퀵스텝을 추고 있다.


읽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옮겼다. 글을 쓰기에도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집중을 잘 못하는 내게 지금은 읽기보다 쓰기가 나은 순간이다.

잠깐 고개를 들다 옆자리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 쓴 얼굴로 눈웃음을 보내며 손을 살랑 흔들어 주었다. 아이가 수줍어하며 웃는다.

한적할 때 구석자리로 느껴지던 내 자리는 이제 꽉 찬 홀 한가운데가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읽기는 그만두고 창 밖 낮게 깔린 구름 사이 실버 라이닝을 즐겨야겠다.

영어와 스패니쉬 사이 실버 라이닝처럼 들려오는 사랑하는 우리말을 음악 삼아야겠다.

외로움을 기대했지만 외롭지 않은 아침이다.

그리고 나는 옛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중얼거린다 ⎯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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