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Jan 06. 2023

부모라는 이름으로

비어있음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비어있음은 다시 채울 희망을 말하기도 하지만, 고통이 없이는 희망을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집에 돌아갈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둘째 아이는 아침나절 한결 여유롭게 짐을 꾸렸다. 대학 기숙사로 떠나던 3년 전 도움 없이 가방을 싸보라 했더니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게 생생한데, 어느새 혼자 척척이다.

두 아이가 독립해 다른 주에서 둘이 함께 산 지 벌써 2년이 넘어간다.

겨울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한 주를 함께 지내고 나서 첫째 아이는 회사 일이 바빠 먼저 집에 돌아가고, 이제 둘째도 돌아갈 날이 되었다.


함께 지낸 보름은 파란만장했다.

아이들이 집에 오기 하루 전 첫째와 통화하다 기분이 상한 나는 오지 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며칠 계속된 첫째의 무심과 오만불손에 애써 참고 있던 감정이 그만 폭발을 한 것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깨달았다, 참으려면 끝까지 참아야 한다는 것을. '가다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라는 말도 생각났다. 참는 김에 계속 참을 걸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자책과 함께, 그동안 애써 참아온 게 아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꾸역꾸역 집에 온 그들을 나는 마음을 활짝 열고 반겨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만지고 싶고 비비고 싶던 아이들을 앞에 놓고도 닫혀버린 마음이 스스로 야속했다.

그런데 부부싸움만 칼로 물 베기가 아니었다. 말을 아끼며 할 일만 하는 내게 첫째가 먼저 다가와 "엄마, 왜 그래?" 하는 바람에, 마음에 쌓였던 눈이 다 녹아버렸다. 변덕인지 갱년기 양극성인지 사람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간사할 수 있는지 내 마음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진정한 만남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늘 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기, 맛있는 것 먹기, 가족과 보드게임 하기, 아빠의 신용카드로 쇼핑하기,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전에 살던 동네 가보기,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는 친구들 만나기 등이다. 이번엔 독감과 코로나 백신 접종도 했다. 열이 펄펄 나는 둘째를 보며, 모두 같이 있는 여기서 주사 맞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사방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워낙 춥고 눈이 많은 곳이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그리 달갑지 않다. 게다가 툭하면 혹한에 비행기 스케줄이 엉망이 돼 발이 묶인다. 작년 겨울엔 집에 가려던 둘째가 공항에서 다섯 시간을 대기하다 결국 우리 집으로 돌아오더니, 이번에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집에 가려던 첫째가 네 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비행기를 탔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날씨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우리는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했다.

나는 글벗 고마나 작가님이 학생들과 하신다는 고민 상담을 우리도 해보자고 제안했다('사람들과 있으면 피곤해요' https://brunch.co.kr/@gomana/135#comment).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허심탄회한 대화에 적잖이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서로 고민을 나누던 우리의 이야기는 반전과 발전을 거듭하다 엉뚱하게 아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어릴 때 이유도 잘 모르고 혼나던 기억, 미처 변명도 못하고 잔소리를 듣던 기억들이 마치 봇물처럼 아이들의 입으로 눈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세찬 물줄기에 이번엔 남편과 내가 변명할 틈이 없었다. 첫째가 말했다, 그런 기억들이 때로 엄마 아빠와의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고.

혹시 엄마가 상처를 준 적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사랑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니 잊으라고 첫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괜찮음과 이해는 생각일 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은 생각과 전혀 다른 길 위에 있었나 보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나도 억울한 게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내가 불만을 쏟아놓을 때마다 나름 한다고 했는데... 얼버무리던 엄마의 얼굴도 생각나고, 육아 스트레스로 지치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이 느낀 아픔에 내 감정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 순간 나는 온전한 부모였다.

저녁과 후식을 다 먹을 때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아이들의 얼굴이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반대로,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아이들에게서 빠져나온 감정의 무게가 이내 나에게 실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무게감이 바로 부모인 내 몫이라는 걸.

그날 밤 유난히 잠 못 이루는 남편을 보며 그 또한 그 무게감을 견뎌내는 중이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둘째가 탄 비행기는 제시간에 이륙해 무사히 집을 향해 날았다.

제 집에 돌아가 언니와 키득대는 카메라 속 아이를 나는 다시 속절없이 그리워하겠지. 아직 내 코엔 젖내가 가시지 않은 여리디 여린 아기들을 언제까지나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야말로 나를 비춰보는 가장 맑은 거울이다. 결점 투성이의 나도 사랑받는 존재일 수 있는 건 그들이 있어서다.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이를 먹으며 나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힘들다고 툴툴대는 순간조차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서툰 부모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빈 둥지가 된 허전함 속에 있다. 아이가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 아이의 옷을 걸었던 자리가 순식간에 일어난 영화 속 장면전환 같다.

비어있음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 작가님의 글 덕분에 가족과 좋은 시간을 가져서, 그리고 글의 링크를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고마나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07화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